“만일 온 세상이 비를 바랄 때 이렇게 한 뜨락만 비로 적신다면, 일은 다 된 듯싶다.”

- 열하일기 산장잡기 ‘거북을 탄 선인이 비를 부르다(乘龜仙人行雨記)’에서

1780년 8월 14일, 열하의 황제 피서산장. 연암 박지원은 며칠에 걸친 청 건륭제의 70회 생일잔치를 구경한다. 신선 같은 용모와 차림의 노인이 큰 거북을 타고 들어온다. 거북은 마치 스프링클러처럼 입으로 물을 뿜는다.

그리고 건륭제가 있는 전각을 돌면서 처마와 기왓골, 화분, 인공으로 만든 산 등을 차례로 적신다. 나중에는 더욱 많이 뿜어내 전각 처마에 물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린다. 마당에 물이 차자 내관 수십 명이 나와 대빗자루를 들고 물을 쓸어내린다.

이 상황은 실제 거북이라기보다는 아마 거북 모양의 수차(水車)로 보인다. 신선이 거북을 타는 ‘가귀선인’(駕龜仙人) 개념은 우리나라에서도 왕실 의장기로 사용됐다. 왕의 신성성, 초월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

연암은 황제를 위한 각종 축하공연과 구경거리의 감흥에 젖기보다는 애민적 사고가 앞선다. 옛 글에 착한 정치를 기다리는 것을 ‘가뭄에 비 기다리듯한다’고 표현했다. 연암은 “가뭄에 온 천하가 비를 기다릴 때, 천자의 뜨락에만 물을 뿌려 무슨 소용인가?”라고 꼬집어 묻는다.

불꽃놀이와 등불놀이 등은 한순간 구경거리에 불과할 뿐, 결코 백성을 위한 정치는 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고른 은총을 바라고 있는데, 정작 모든 혜택은 천자에게만 집중되고 있는 세태를 비판한 것이다.

거북의 등을 탄 가귀선인기(駕龜仙人旗), 국립고궁박물관

■ 인디언 풍습과 유사한 도마뱀 협박 기우제

자연재해를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어떤 초월적 존재나 주술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집단의식이 나타난다. 비를 염원하는 의식은 지역과 민족을 막론하고 거의 예외 없이 이뤄졌다. 하늘의 힘이라도 빌려보려고 안간힘을 쏟는 것이다.

기우제를 올리면 비가 올까? 항간에는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왔다고 한다. 인디언 주술사들은 한 번 하늘에 ‘비 좀 내려주세요’라고 의식을 시작하면, 비가 올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언뜻 보면 상식의 허를 찌르는 반전인 듯하다.

하지만 북미 인디언들이 그런 식으로 기우제를 지낸 일은 없다. 미국 중부 인디언들은 가물 때 개구리를 단지에 넣고, 물가 나뭇가지로 단지를 치며 비를 노래했다.

조선 초기 태종 연간에는 항아리에 도마뱀을 집어넣은 후, 버들가지로 도마뱀을 괴롭혀 기우제를 지냈다. 물을 관장하는 신은 용이다. 용과 비슷한 도마뱀을 괴롭히자 비가 내렸다는 중국 소동파의 고사를 따라 한 것이다. 태종의 ‘도마뱀 협박’ 기우제는 인디언 풍습과 유사한 점이 많아 흥미롭다.

인디언 기우제

도마뱀과 버들가지, 개구리 등은 모두 물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다. 용은 평상시 물속에서 살다가 하늘로 올라가 구름과 비를 만들어낸다고 여겼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도 기우제 풍습을 말하는 대목이 있다. 가뭄이 들면 짚으로 용을 만든 다음 진흙을 바르고서 아이들로 하여금 질질 끌고 다니게 했다. 이때 아이들은 용에게 욕도 하고, 때리기도 한다. 용을 화나게 하기 위해서다. 물의 왕인 용왕이 화를 내야만 비가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밤은 호랑이가 지배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호랑이가 가장 무서워했던 것은 무엇일까? 전남 장성군 북하면 곶감마을의 곶감일까? 아마 조선 시대 호랑이가 최고 두려워했던 것은 가뭄일지도 모른다.

도마뱀이 제대로 잠자는 용을 깨우지 못해서 일까? 1416년(태종16) 5월부터는 호랑이 머리까지 동원해 기우제를 지냈다. ‘용호상박’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두 동물이 싸울 때는 비가 온다는 풍습에서 비롯됐다. 북한산과 남산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진짜 호랑이 머리를 잘라 한강에 빠트렸다. 호랑이 머리를 강에 넣는 의식은 ‘침호두(沈虎頭)’라 하여 1809년(순조9)까지 관행으로 진행했다. 이로 인해 조선시대 수십 마리의 호랑이 머리는 한강에 던져졌다.

충남 금산 ‘농바우 끄시기’ 기우제 장면

 ■ 유감주술(類感呪術) 기우제는 자연에 대한 서원

음양 사상의 시각에서 보면 가뭄은 양기가 과할 때 발생한다. 우리 조상들이 기우제를 지낸 것은 가뭄을 천신께 알리고, 불의 양기를 빌려 음기인 비구름을 부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기우 의식은 여성이 주관하는 경우가 많다. 비를 내리는 하늘(남성)을 움직이는 것은 땅(여성)이라는 우주관이 여기에 깔렸다.

경북 경주의 기우제는 무당 수십 명이 젖가슴과 아랫도리가 드러나는 파격적인 춤을 췄다. 충남 금산군에는 ‘농바우 끄시기’라는 기우제가 전승된다. 부리면 어재리 시루봉 중턱 ‘농바우’에 동아줄을 매고 이를 잡아당기면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우 풍속이다.

‘끄시기’란 ‘끌다’ 또는 ‘끌어내린다’는 뜻을 지닌 금산 지역의 사투리. 농(籠)처럼 생긴 바위를 끈다는 뜻. 30대 이상의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한 기우제다. 남자들은 짐을 날라 준다든가 하는 등의 보조적인 일만을 수행하고, 기우제에는 참석할 수 없다. 부녀자들만 농바우 아래 흐르는 계곡물에 떼 지어 들어가 알몸으로 날궂이를 하고 끝을 맺는데 이를 보고 너무 상스러워 하늘이 비를 준다는 것.

여자가 집단으로 춤을 추거나 오줌을 누면 음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뤄 비가 내린다는 음양 사서에 기반한 믿음에서다. 동유럽에서는 꽃으로 알몸을 장식한 소녀들이 춤을 추며 가가호호 방문할 때 마을 여인들이 이들에게 물을 뿌리며 강우를 빌었다. 자연에 대한 서원을 담은 일종의 ‘유감주술’이다.

“가뭄이 심한 게 궁녀들의 원한 때문인가 합니다. 궁녀들이 돌아가면서 출근하게 하여, 남녀의 정을 다하게 하면 거의 화기(和氣)에 이르러서 가뭄의 재해를 그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1414년(태종14) 6월 6일. 태종실록>

가뭄이 심했던 조선 태종 때는 궁녀들까지 3교대로 휴가를 내보냈다. 음양의 이치를 강조한 세자 양녕대군의 건의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남녀가 관계를 갖는 것을 은유적으로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눈다고 표현한다. 성종과 중종 때도 시집 장가 못 간 노처녀·노총각의 한이 서려서 비가 오지 않는다는 진단을 내린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전통 기우제 장면

■ 저출산 해법 싱글세는 답이 아니다

1472년 성종은 아예 ‘전국 노총각·노처녀들의 수를 죄다 파악해서 혼수품까지 주어 혼인시킬 것’을 지시한다. 어명에 따라 전국의 25세 이상 처녀들의 재산까지 조사했다. 가난한 자들에게는 쌀·콩을 10석(20가마×80kg) 씩 혼수로 지급했다. 이익의 <성호사설>에서도 ‘나이 찬 남녀를 결혼시키고 젊은 과부와 홀아비를 결합시킬 것’을 기우제 때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2018년 개봉한 영화 <궁합>에서도 비슷한 스토리를 볼 수 있다. 극심한 가뭄과 흉년이 지속되던 영조 29년, 대신들은 혼기 찬 옹주의 혼례를 왕에게 고한다. 왕(김상경 분)은 송화옹주(심은경 분)의 혼사만이 가뭄을 해소할 것이라 믿고 대대적인 부마 간택을 실시한다. 조선 최고 역술가 서도윤(이승기 분)은 부마 후보들과 송화옹주의 궁합 풀이를 맡게 된다는 설정을 바탕에 두었다.

요즘 청춘 남녀들의 결혼연령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이미 세계적 저출산 국가에 접어들었다. 청년층의 취업이 빨라지면 결혼 연령도 낮아진다. ‘꼬리 자르기’ 선수인 ‘도마뱀 협박 기우제’나 ‘인공 강우’로는 직장과 애정에 목마른 대한민국을 구해낼 수 없다. 아마도 만혼 트렌드와 저출산 원인을 새로운 곳에서 찾아야 할 듯싶다.

연암 박지원은 제자 이서구를 위해 써준 ‘녹천관집’ 서문에서 “비슷한 것을 구하려 드는 것은 그 자체가 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라고 갈파했다.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맞서 싸워야 할 적은 거짓이 아니라 비슷한 것들이다. 실체가 아닌 그림자, 실상이 아닌 겉모습을 붙들고 싸우는 사람은 실패한다. 그런 것을 붙들고 싸우는 국가도 역사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연암 시절 북학이냐 북벌이냐를 두고 편을 갈라 싸우던 것이나 지금의 한국이 민주냐 시장이냐를 두고 대립하는 것과 같다. 소 머리에 파리가 앉았다고 소가 정복당했나. 지금은 멈춘 것이 아니다. 새 힘을 모으는 중이다.

신동엽 시인이 ‘껍데기는 가라’고 외친지 그 언제이던가. 서민들은 여전히 소득 양극화와 청년 실업, 가계 부채, 노인 빈곤 등으로 가슴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비도 그냥 내리는 비가 아니다. 모든 것을 씻어주는 폭우성 빗줄기를 갈망한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 가뭄까지 씻어주는 현대판 기우제가 필요한 때다.
<문화평론가 박승규 0109151425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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