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섭 주필

최근 조선시대 상소문 형식을 빌려 정부 정책을 풍자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이 세간에 화제다. 자신을 ‘진인 조은산’이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시무 7조 주청 상소문에서--’

그는 국민이 세금폭탄과 규제 위주의 부동산정책과 방만한 재정정책, 좌고우면하는 외교안보정책 등 현 정부의 정책을 조목조목 신랄하게 풍자해 썼다. 자신을 진인(塵人), 즉 ‘먼지 같은 사람’이라 부르고 ‘미천한 소인’이라고 스스로 낮췄지만, 약 1만 4000자에 달하는 ‘현인’의 상소문 속에 담긴 의미는 크고 깊었다.
조은산은 언제, 왜, 무엇에 그토록 분노했을까? 당초 청와대가 비공개 처리했던 시무 7조 상소문이 들불처럼 빠르게 입소문을 타자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짧게 근황(‘조은산이 아룁니다’)을 올리기도 했다.
그의 글을 보고 ‘폐하의 대변인’처럼 나타난 아무개 시인을 가볍게 한 방 먹이더니 다시 은둔 모드로 돌아갔다. 그래서 현묘한 조은산의 존재를 온전하게 파악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시간을 되돌려 조은산이 지금까지 쓴 4편의 상소문과 다른 글도 하나씩 퍼즐처럼 맞춰졌다. 문장의 행간에 그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단서들이 숨어 있었다.
이를 토대로 그의 사유와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 봤다. 그가 “피를 토하고 뇌수를 뿜는 심정으로” 격문 같은 상소문을 쓴 진짜 이유가 조금씩 보였다. 조은산은 인천에 사는 39세 박봉의 월급쟁이이고, 등에 업힌 아들과 기저귀를 찬 딸을 둔 순수한 아빠다.
“그는 다섯 살에서 스물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난방이 되지 않는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당시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몸을 맞대었고 중학교에 다니면서 배달 일을 시작했고 공사판을 전전하여 살았다고 한다.
그는 정직한 부모님의 신념 아래 스스로 벌어먹었으며 가진 자를 탓하며 더 내놓으라 아우성치지도 않았고 남의 것을 탐내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번 그가 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시무 7조 상소문은 “삼가 굽어살펴주시옵소서”라고 시작된 조선시대 최승로의 상소문을 본떴다.
이 글은 청와대 게시판에 올랐다가 보름 동안 공개되지 안 했는데 보름 뒤 다시 공개됐다. 감추고 싶었던 걸까. 다시 청원글이 공개되자 청와대 게시판에는 동의자가 30만명으로 불어 나기 시작했다.
“이 나라를 도탄 지고에 빠트렸던 자들은 우매한 백성이었사옵니까”, 아니면 “제 이득에 눈먼 탐관오리들과 무능력한 조정의 대신이었사옵니까”? 등 울분이 넘치게 썼다. 또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는 “신하를 가려 써달라” “감성보다 이성을 중히 여겨달라” “헌법 가치를 지켜달라” “갈등과 분열을 끝내달라”고 진언하기도 했다.
또 다른 상소문에는 ‘영남만민소’에 전·현직 청와대 참모진들의 도덕적 불감증과 정부의 정책 실패 등을 거론하면서 거침없이 꼬집기도 했다. 그나저나 다음엔 또 어떤 형식의 정권의 비판 글이 청와대 게시판을 장식하게 될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이런 고언이야말로 시중의 여론을 적중했다는 지적들이다. 원래 풍자란 정치적 현실과 세상 풍조의 폐해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시국이 어수선하고 민심이 술렁일 때일수록 각광받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옛날 성군은 상소문을 읽고 일일이 비답(批答)을 내리기도 했다. 심지어는 기생이 올린 상소문에도 비답을 내렸다. 입만 열면 20년, 30년 집권론을 부르짖는 현 여권 인사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정부가 툭하면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소수의견을 외면하는 데 급급하니 국민이 흡족한 정책이 나올 리 없다. 비판을 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한다는 격언이 있다.
취임 선서 때부터 유달리 소통을 강조해온 ‘금상(今上) 폐하’가 이제 민심에 응답할 차례이여 어떤 비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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