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정순왕후 가례도감 의궤

고대 제왕들의 최대 꿈은 불로불사였다. 지금이야 의학의 발전으로 무병장수의 꿈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지만 고대에는 자연으로부터 불로초를 얻으려 했다. 불로장생을 꿈꾼 진시황이 대표적 예다. 1759년 음력 6월, 무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조선 왕실에서는 최대 경사가 벌어졌다. 영조(1694~1776)가 66세의 나이로 15세의 꽃다운 어린 신부를 계비 정순왕후로 맞이했던 것. 요즘 시각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조선 왕실 법도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정비가 사망하면 대개 3년상(실제는 2년 3개월 정도)을 치른 후에 계비를 맞이했다.

왕은 대개 왕세자 시절인 15세 전후에 혼인했다. 세자빈의 나이 또한 왕세자와 비슷한 15세 전후였고, 때에 따라서는 연상인 경우도 많았다. 영조의 정비인 정성왕후나 고종의 비 명성왕후는 모두 연상녀였다. 그런데 정비 사망 후 맞이한 계비는 왕의 나이는 고려하지 않고, 15세 전후의 신부를 간택했다. 이러한 관례 때문에 선조와 인목왕후는 51세와 19세의 연령 차, 심지어 영조는 66세에 15세 신부를 맞이하는 상황이 연출됐던 것이다. 51세의 나이 차가 무척이나 커 보였지만 어린 계비 또한 영조 못지않은 야심에 찬 인물이었음은 후대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왕이 위독하거나 왕족의 피로회복을 위해 인삼이 처방된 내용이 자주 나온다. 정순왕후를 맞이한 영조는 만년의 삶 17년을 함께 보내다가 1776년 3월 5일 경희궁에서 보령 83세로 승하했다. 영조는 52년을 치세한 조선시대 최장수 왕이었다. 영조는 조금만 찬 음식을 먹어도 배탈이 나고 자주 소화불량에 시달리던 약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그가 조선의 왕 중 가장 장수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영조의 장수 비결은 우선 술을 거의 마시지 않고 건강관리에 무척 신경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두 번째는 바로 인삼이다. 영조는 자신의 건강 비결을 인삼의 정기라고 생각했다. 72세 되던 해 한 해 동안 20여 근의 인삼을 먹는 등 1752년부터 1766년까지 14년 동안 무려 100여 근의 인삼을 복용했다고 한다.

정조 22년 동지사 사신으로 연경에 다녀온 서유문이 현지에서 듣고 본 내용을 정리한 ‘무오연행록’에는 청나라의 건륭황제가 중병이 나 홍삼을 매일 달여 먹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태상황이 섣달 초승에 마침 차가운 날음식을 과도하게 잡수고 병환이 심해져 날마다 홍삼 넉 돈씩을 달여 쓴다”고 북경 상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또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한 통신사는 쇼군과 막부 측 인사들에게 예물로 인삼을 전달했다. 인삼의 효능에 감탄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07년 통신사로부터 얻은 인삼을 가지고 재배를 시도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인삼은 기허(氣虛)증, 즉 기가 모자란 병증에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약재다. 원기를 크게 보하며 진액을 늘려주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허약자나 노인이 쉽게 피로해지고 피로가 풀리지 않을 때, 인삼을 쓰면 기운이 나며 입맛이 좋아지고 속이 편해지면서 체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인삼 역시 누구에게는 독이 되고, 누구에게는 천하 명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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