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연합뉴스)

"내 돌봄은 온전히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기억하는 자식으로서의 도리다. 때때로 힘들고 벅찬 순간이 오지만 할머니를 돌봐드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힘들지만 최선을 다한다."

23살의 취업준비생인 손녀는 2017년 12월 대학교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기숙사를 떠나 8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 치매에 걸린 89살의 친할머니와 함께 생활한다.

부모님으로부터 숙식을 제공받고 무급으로 주5일 일하는 간병인이 됐다. 매일 할머니의 기억력을 테스트하고, 할머니와 같이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콩을 고르고 마늘을 깐다.

저자는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할머니와 지내며 돌봄의 일상을 기록한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에서 할머니와 함께했던 마지막 2년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할머니는 평생 한집에 함께 살며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봐줬고, 지금 할머니를 자신이 돌보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을 전한다. 어쩌면 돌봐드릴 수 있음에, 사랑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에게 할머니는 평생 농사를 짓고, 경작 영역을 넓혀가며 수익을 만들어내는 꽤 능력 있는 농부였다. 바깥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집안일도 소홀히 하지 않은 '슈퍼우먼'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할머니의 식사와 목욕을 챙기고, 대소변까지 치우는 저자를 '효손녀'라며 칭찬한다. 하지만 저자는 "계속해서 할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의무를 지우는 말"이라며 돌봄을 나눠야 한다는 주장도 펼친다.

엄마의 일방적인 희생을 더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할머니를 직접 돌보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할머니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집에서 할 일을 하다가도 할머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했고, 고요하면 불안했다. 항상 집에 사람이 있어야 했고, 종일 집에만 있어야 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공간 자체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저자는 자신보다 할머니를 더 극진하게 돌보는 건 언제나 엄마였으며, 엄마의 돌봄노동은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의 핏줄인 자신에게 왔을 때야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고백한다.

책은 "할머니는 그저 며느리의 노동을 착취하는 가해자이기만 할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할머니 역시 얼굴도 모르는 이와 결혼을 하며 고향을 떠났다. 남편의 집으로 와서 70년 동안 힘든 농사일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도맡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할머니 역시 결혼했다는 이유로 '당연한 노동'의 폭력성을 감내해야 했다"며 "이 노동의 내물림 속에서 할머니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고 덧붙인다.

2019년 12월 할머니는 가족들 곁을 떠났다. 저자는 할머니를 떠나보내며 한 인간으로서 할머니의 인생을 생각한다.

할머니를 '어리석은 병'에 걸린 노인이 아니라, 한 시대를 용감하게 살아낸 여성이라고 이야기한다. 책에는 앞선 세대 여성의 고된 삶과 가족 안에서 여성의 위치에 대한 20대 여성의 깊은 고민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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