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제공=연합뉴스]

4·7 재보선 이후 페미니즘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이번 논쟁의 출발은 ‘20대 표심’이었던 만큼 페미니즘과 반(反)페미니즘이 충돌하는 지점은 ‘청년’이다.

60대 중반에 들어선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 김영옥이 쓴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교양인 펴냄)은 이처럼 페미니즘 내에서도 주변인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페미니즘은 삶의 모든 국면, 그동안 역사가 구축해 온 지식체계 전반을 젠더 관점에서 낯설게 보고 새롭게 정초하는 데 힘을 써 왔다”면서도 “그러나 그 페미니즘의 대안 세계 안에서도 늙고 병들고 아프고 돌보며 돌봄 받는 이들의 이야기는 변방에 머문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저자가 책에 실은 에세이 열네 편의 텍스트는 모두 여성 노인들이다. 갱년기 여성, 속칭 ‘박카스 할머니’, 요양병원의 치매 환자, 정치하는 할머니 등이다. 이들은 저자의 체험을 비롯해 소설과 영화, 시, 무용 등에 나오는 인물들로 저자는 이 시대 노년의 삶을 페미니즘의 눈으로 성찰한다. 

먼저 ‘완경’이라는 말로는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갱년기의 의미를 말한다. 저자는 “완경과 더불어 시작하는 제2의 삶은 느린 삶이어야 한다”며 “헐떡이며 좌충우돌하는 ‘미친 시간’의 광기를 가라 앉혀줄 땅의 부드럽고 완곡한 호흡을 만나야 한다”고 권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땅에 가까운 삶’은 “싹을 틔워 올려보내는 땅의 기운과 바람을 느끼며 사는 것”이자 “사회 문화적·정치 경제적 힘뿐 아니라 생명을 키우는 자연의 힘을 구체적으로 맛보며 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선배 페미니스트로서 저자는 “여성주의 이념에 따라 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변혁하는 여성들의 경우 특히 제1의 삶에서는 ‘있는 삶’이 아니라 ‘도래해야 할 삶’을 살아왔다”면서 제2의 삶에서 이들이 ‘지금 여기 있는 삶’을 살기 바란다는 희망을 전한다.

책은 노년에도 계속되는 에로스적 사랑과 배우자나 가족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 치매를 대하는 새로운 시각까지 나이 듦을 둘러싼 이야기를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유쾌하게 펼친다.

저자는 어머니를 여읜 상실의 고통을 겪으면서 애도를 통한 연대의 가능성을 깨닫고 가정과 노인요양시설에서 여성에게 전가되는 돌봄의 문제를 드러내기도 한다.

‘배회의 위험’이 염려돼 요양원에 모셔진 노인들은 사면이 벽으로 둘러쳐진 요양원 안에서도 배회하며, 더는 걸을 수 없어 휠체어에 탄 상태에서도 배회는 이어진다고 한다.

이미 조금씩 타인의 도움이 필요해졌다는 저자는 위험한 배회를 할 수도 있는 미래의 자신을 위해 연대를 제안한다.

“반드시 맞이하게 될 ‘늙은 자기’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저자는 “노년의 삶에 대한 상상력이 자본주의를 넘어, 가족 중심주의를 넘어, 이동통신 테크놀로지 신앙을 넘어,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흐르고 펼쳐질 때, 연대의 힘은 규범적 당위성의 껍질을 벗고 ‘안전하고 아름다운’ 구체적 현실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충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