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 충남대 한문학과 문학박사
이명희/ 충남대 한문학과 문학박사

2022년 임인년은 육십갑자 중 39번째에 해당하는 ‘검은 호랑이의 해’로 특별한 의미를 담고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며 우렁차게 새해를 시작했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용맹과 위엄있는 풍모로 사람들에게 경외의 대상은 물론 신(神)처럼 여겨졌던 동물이다. 그래서 많은 제사에 호랑이가 모셔지고 산신도나 민화에도 등장한다. 또 왕을 상징하여 먼 옛날 우리의 단군신화로부터 88올림픽의 호돌이, 평창동계올림픽의 수돌이까지 우리 민족과 한국인의 문화를 표현하는 상징동물로 그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냈다. 이렇게 한민족의 삶과 문화 속에 친근한 호랑이가 때론 ‘호환(虎患)마마’란 말이 있을 정도로 두려운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바로 『예기(禮記)』에 “가정맹어호야(苛政猛於虎也)”라는 성어에 등장하는 ‘가혹한 정치’이다. 가정(苛政)이란 혹독한 정치를 말하는데 백성들에게 미치는 해(害)가 사나운 호랑이의 해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들과 제나라로 가던 중 허술한 세 개의 무덤 앞에서 슬피 우는 여인을 만났다. 우는 까닭을 물으니 여인의 대답은 “이곳은 정말 무서운 곳입니다. 몇 년 전에는 시아버지가 호환(虎患)을 당해 돌아가셨고, 작년에는 남편도 호랑이에게 화를 당해 죽었는데, 이번에는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잡아먹혔습니다” 이에 공자가 “그렇다면 왜 이 무서운 곳을 떠나지 않는가?”라고 물으니 여인의 대답은 “그래도 이곳에서 사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다른 곳은 가혹한 세금과 부역에 시달려서 도저히 살 수가 없는데 그나마 이곳은 가혹한 정치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는 제자들을 향해 “백성들에게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다(苛政猛於虎也)”라고 하며 명심할 것을 당부했다.

호랑이의 위험은 조심하면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가혹한 정치는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산속에 숨어 사는 편이 더 낫다는 당시 민중의 고통에 대한 안타까운 토로이다. 공자의 사상은 당시 상황으로 볼 때 나름 진보적인 사고를 가졌으나 공자 자신은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여 이상적인 성군이던 요·순·우·탕·문·무·주공의 시대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그 시대는 성군이 민중을 이끌며 民心이 곧 天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백성이 주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백성의 고통을 알고 그들의 척박한 삶을 개혁하려는 공자의 사상을 단순히 기득권층의 옹호자, 보수의 상징으로 이해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유학을 숭상한 조선시대의 권력층은 공자의 사상을 내세우면서 그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다. 때문에 유학은 조선을 망하게 한 학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아직도 조선의 멸망을 유학에서 초래된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 그 어느 때보다 종교의 힘이 강했던 유럽의 중세가 어두운 그림자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예수 역시 보수보다는 개혁적인 모습이 선명했지만, 지금 종교계는 보수의 이미지가 훨씬 더 강하지 않은가.

조선 중기 기득권층의 횡포에 맞선 허균의 호민론(豪民論)은 상당히 개혁적인 글이다. 허균은 “천하에 두려운 것은 오직 백성뿐이다. 백성이 수재(水災), 화재(火災), 호환(虎患), 표환(豹患)보다 두려움이 심하다(民猛於虎)”라고 했다. 즉 백성이 호랑이보다 두려운 존재라는 뜻이다.

그는 백성을 항민(恒民)·원민(怨民)·호민(豪民)으로 구분해 설명했다. 항민은 자기의 권리나 이익을 주장할 용기조차 없이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며 산다. 원민은 수탈당하자 억울해하며 윗사람을 탓하고 원망한다. 호민은 몰래 딴마음을 품고 기회를 엿보다가 때가 되면 일어난다. 그가 가장 두려워한 백성은 바로 호민이다. 허균은 폭정이 심해지면 호민이 일어나게 되니 개혁이 시급하다고 주장하였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많은 논란이 있지만 우리가 허균을 꼽는 이유도 바로 소설의 사상과 그의 주장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허균은 백성이 두려운 이유를 혼란에서 찾았다. 그들이 가진 천부인권을 존중하지 못한 탓이다. 호민이 나서는 상황은 촛불 시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반발하는 백성이 두려워 선정(善政)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새로운 시대의 백성 즉 국민은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통치의 주체이다. 대권은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이 위탁한 권리이다. 

대권도전자는 국민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그들의 당락을 국민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만으로는 부족하다. 호랑이에게 느끼는 경외감처럼 공경이 따라줘야 한다. 국민이 존경의 대상이며 하늘과 같은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잠시 국민을 속일지라도 그것은 일시일 뿐이다. 부디 국민을 경외하면서 역사가 기록되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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