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식/코레일사업개발본부장
성광식/코레일사업개발본부장

누군가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아마도 신께서 직접 도시를 만들지 않고, 인간의 손을 빌린 것은 도시란 신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도시라는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숙명이기에 인류 문명의 시작이 곧 도시 역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UN의 통계에 의하면 오늘날 전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약 55%)이 도시에 살고 있으며, 이 수치는 당연히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대표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22개 나라의 도시화율은 평균 83%이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선진국가는 대다수의 국민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니, 도시인구 거주비율은 선진국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로 삼아도 될 듯하다. 반면에 아프리카 등 미개발국가의 도시화율은 30%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도시란 우리 인간에 무엇일까? 인간은 단순하게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의 본능에서 만족하는 수준을 넘어, 끊임없이 창조적으로 진화하는 높은 단계의 문화를 지향하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그러한 높은 단계의 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이 바로 도시이다.

도시라는 공간을 살펴보자. 도시는 노동을 위한 일터이외에도 승용차나 버스나 지하철 등 이동을 위한 시설들, 먹고 마시고 이야기 하는 다양한 편의시설들, 보고 움직이고 즐기는 오락시설들... 요약하면, 도시와 대비되는 개념의 농어촌의 자연공간에는 없는 수 많은 시설들이 있는 곳이다. 도시공간은 시민들이 더 높은 수준의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도시를 건설하는데 꼭 필요한 시설들은 무엇이고,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 지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도시공원의 면적은 최소 1인당 6㎡이상은 되어야 하고, 초등학교의 통학거리는 1500m이내이어야 하는 등 말이다.

이렇게 열거하고 있는 도시기반시설이 무려 46개가 된다. 사실 이러한 시설들은 어찌 보면 현재의 시각에서의 기준일 뿐이고, 도시민의 요구나 삶의 변화에 따라서 얼마든지 많아 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시설을 법률로 정할지 말지가 다를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설들이 갖추어졌다고 도시민이 만족할 수 있을까? 우리는 대개 “당신은 어디에 사느냐? 어디 출신이냐?”고 묻곤 한다.

상대방의 출신지나 현재 살고 있는 동네만 알아도 그의 성장 환경이나 지금의 생활 패턴이 어떤지 대충 미루어 짐작하곤 한다.

물론, 그러한 대화 과정에서 서로의 공통점이나 동질감을 찾고자 하는 사실은 별도로 하고 말이다. 마치 ‘뉴요커(Newyorker)’하면 바쁘고 역동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반면에, ‘빠리지엥(Parisian)’은 자유, 예술, 낭만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도시도 ‘부산시’와 ‘전주시’가 갖는 도시이미지가 같을 수 없듯이 말이다.

요즘 주택시장에서 똘똘한 한 채란 말이 있다. 똑똑한 것보다 더 똑똑한 ‘똘똘하다’는 표현까지 받아가는 주택은 소재지와 가격면에서 단연 다른 주택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주택 자체가 무슨 IOT 등 첨단기능을 갖춘 것이 아니라, 특정지역에 위치한 아파트를 일컬어 똘똘하다고 지칭하고 있다.

그 특정 지역은 교육환경이 잘 된 학세권, 지하철역이 가까운 역세권, 공원녹지가 풍부한 숲세권, 심지어 슬리퍼만 신고 나가도 모든 생활편익이 잘 되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슬세권 등이다.

어찌보면 그 비싼 주택가격은 사실 주택 밖에 갖추어진 그 동네의 인프라 가격인 셈이다. 그러니, 비싼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비싼 동네에 사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동네(도시) 인프라(시설)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가 똘똘한 한 채를 만들 수 있는 비법인 셈이다.

코로나가 펜데믹인 현실에서 사람들은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고, 사는 게 영 재미가 없다고 한다. 그것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상의 접촉과 도시의 문화적 향유를 금지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즐기는 사이버공간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일시적이고 제한된 상황으로 이용되는 것이지, 그것이 대세가 되어서도 안되고 그럴수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더불어 함께 눈을 마주보며, 피부로 느끼는 감각으로 소통되어야 하고, 그런 공간이 바로 도시안에 있다. 어서 펜데믹의 족쇄에서 풀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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