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섭 주필
임명섭 주필

영화 창작자들이 가상으로 설정한 '원전은 위험한 폭탄'이라는 메시지는 결국 문 정부 출범 이후 근 5년 동안 탈원전 정책의 바이블로 작용했다. 최악의 원전사고를 가정한 재난영화 '판도라'를 관람한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후 탈원전 정책 구상을 천명했다.

"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원전이 밀집된 고리에 340만명이 살고 있다. 만약 원전사고가 나면 최악의 재난이 될 것이다. 판도라(원자력 발전) 뚜껑을 열지 말 것이 아니라 판도라 상자 자체를 치워버려야 한다."

체르노빌, 후쿠시마와 같은 원전사고가 한국에서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역대급 규모의 지진으로 원전에 균열이 가고, 여기에 사고를 은폐하려는 정부의 무책임까지 더해지면서 원전사고는 최악으로 치닫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6월 고리 원전 1호기의 영구 정지를 선언하면서 "원전이 안전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으며, 친환경적이지도 않다"고 했다. 이후 탈원전 정책으로 우리 원전산업 생태계가 초토화되는 등 폐해들이 산적했다. 

경제성 평가를 조작해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했고, 7천억 원 이상 투입된 신한울 3·4호기 공사도 중단했다. 5년 동안 탈원전을 밀어붙이더니 퇴임을 앞두고 원전 중요성을 인정한 듯한 문 대통령의 발언에 말문이 막힌다.

문 대통령은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 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빠른 시간 내에 단계적으로 정상 가동을 할 수 있도록 점검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원전을 죄악시하며 탈원전을 고집하다가 임기가 끝날 때가 돼서야 느닷없이 원전 활용을 강조해 어안이 벙벙하게 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진정성이 의심받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탈원전에 비판적인 민심을 달래려는 술수로 여겨지기도 한다. 

신한울 1·2호기는 공사가 지연될 만큼 지연된 후 상업운전 절차를 밟고 있어 문 대통령의 언급이 별 의미가 없다. 대선을 앞두고 야당 후보들이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를 공약했고, 여당 후보도 국민 합의를 전제로 탈원전을 다시 판단하겠다고 공언한 터다.  

임기 내내 고집스럽게 탈원전에 대못질을 해온 문 대통령 아니던가? 지난해 10월 탈원전 반대 서명이 100만을 넘어섰을 때도 일언반구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원전을 안 돌려도 전기가 남아돈다고 했던 그의 태도 변화가 더 놀랍다. 

세계 최고 원전산업을 사양화시킨 문 정권이 할 말은 아니다. 탈원전 폭주로 일부 대학은 원자력학과가 없어졌고 일감을 잃은 부품 업체 수백 곳이 파산해 근로자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사상 최대 한전 영업손실은 전기요금 폭탄으로 돌아 오기도 했다. 

지난 5년 내내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한국전력은 지난해 역대 최대인 6조원의 적자를 냈다. 한전의 적자 기조는 일반 전기 사용자의 전기료 인상이나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될 것이 뻔하다. 

정부가 탈원전의 반대급부로 육성하고 있는 태양광 산업도 정책적인 지원 미비와 중국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국내 기업의 사업철수가 현실화되기도 했다. 탈원전 폭주가 남긴 상처는 깊고 크다. 우리의 50여 년 쌓아올린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생태계가 무너졌고, 에너지 공기업들은 줄줄이 대규모 적자를 냈다. 

이유야 어쨌든 뒤늦게라도 올바른 방향을 잡았다는 점에서 평가해줄 만하다. 이렇게 탈원전 정책을 강행하던 문 대통령이 느닷없이 원전 활용을 촉구하니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탈원전 후폭풍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궁굼하다.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탈원전으로 망가진 에너지 정책을 정상화해야 한다. 지난 5년간 해외 원전 수주는 전무하다. 그 바람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원전 산업의 주도권은 중국으로 넘어갔다. 때문에 국익 훼손에 사회적 갈등까지 촉발시켰다. 

이 정도면 문 대통령은 국민한테 석고대죄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도 사과는 커녕 탈원전 중단은 없지만 원전은 주력 전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자기모순적 주장을 아무렇지 않게 보였다. 

여론이 불리해졌다고 이제 와서 “원전을 주력 전원으로 활용”하라고 말 바꾸기를 한 것이다. 물론 잘못된 정책은 과감하게 바로잡고 가는 게 정답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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