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표지
시집 표지

[충남일보 조서정 기자] 2008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당선된 임경묵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가 ‘시인의일요일 시집’으로 출간됐다.

임경묵 시인은 수주문학상을 수상하고 대산창작기금을 수혜 받을 만큼 이미 시적 능력을 검증받은 시인이다. 임경묵 시인은 첫 시집 『체 게바라 치킨 집』에서 ‘골목에 소속’된 자로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이름 없는 존재들을 사려 깊게 바라보고 그들의 신음에 귀 기울이며 골목의 풍경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시집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에 수록된 60편의 시를 해독하기 위해 표제시로 제시된 「검은 앵무새」에서 시 해석의 키워드를 찾아봤다.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

노랑뺨초록앵무, 붉은귀앵무, 풀빛허리앵무, 푸른부채꼬리앵무, 검은부리오색앵무, 레인보우앵무, 잿빛목도리앵무, 청머리붉은날개앵무, 긴꼬리파랑가슴앵무도 있습니다만…….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

​검은 앵무새의 섬에 가려면 발로 노 젓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바다 날씨라는 게 워낙 종잡을 수가 없어서요. 무엇보다 꼼꼼히 바다를 저을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

​발로 노 젓는 사람을 만나려면 손으로 노 젓는 사람 배를 타야 합니다. 발로 노 젓는 사람은 적도의 상어에게 두 팔을 주고부터 검은 앵무새가 그의 어깨에 앉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구요.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

​발로 노 젓는 사람과 손으로 노 젓는 사람은 은폐술이 뛰어나 평소에는 보일 듯 보이지 않죠. 손으로 노 젓는 사람만이 발로 노 젓는 사람을 부를 수 있습니다.

​당신은 검은 앵무새입니까?

* 인도양 세이셸 군도의 프랄린(praslin island)에 검은 앵무새의 서식지가 있다.

-​「검은 앵무새」 전문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검은 앵무새」라는 시다. 이 시는 첫 연부터 “검은 앵무새를 찾”는다는 진술로 시작된다. 검은 앵무새를 찾는다는 진술을 하나의 연으로 처리한 것에서 검은 앵무새의 비중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둘째연에서는 “노랑뺨초록앵무, 붉은귀앵무, 풀빛허리앵무, 푸른부채꼬리앵무, 검은부리오색앵무, 레인보우앵무, 잿빛목도리앵무, 청머리붉은날개앵무, 긴꼬리파랑가슴앵무도 있습니다만…….” 다양한 앵무새 이름들이 나열되고 있다. 하지만 이 많은 앵무새들은 큰 의미가 없다.

셋째 연에서도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를 하나의 연으로 반복 제시하면서 검은 앵무새가 가지는 시적 무게감을 강조한다. 검은 앵무새는 그 만큼 존귀한 존재인 동시에 우리가 꼭 찾아야 하는 존재로서 제시된다.

이어지는 네째연에서는 이 시의 배경이 된 검은 앵무새를 보기 위해서는 “발로 노 젓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라는 진술이 이어진다. 손과 발로 노를 젓는다는 것은 자연 친화적인 작은 배를 이용해서 사람의 손과 발로 직접 노를 저어서 바다를 건너야 한다는 말로 해석된다.

여기서 제시된 종잡을 수 없는 바다 날씨는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이다. 그래서 그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연의 순리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 즉 “무엇보다 꼼꼼히 바다를 저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또 다시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라는 반복 진술을 통해 검은 앵무새를 반드시 찾아야 하는 절실함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연에 나오는 “​발로 노 젓는 사람을 만나려면 손으로 노 젓는 사람 배를 타야 합니다. 발로 노 젓는 사람은 적도의 상어에게 두 팔을 주고부터 검은 앵무새가 그의 어깨에 앉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구요.”

그런데 “발로 노를 젓는 사람은 적도의 상어에게 두 팔을 주고부터 앵무새가 그의 어깨에 앉기 시작했다는 설”은 마치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여기서 발로 노 젓는 사람과 손으로 노 젓는 사람의 은폐술은 문명 앞에 도드라지지 않는 삶이다. 그래서 “손으로 노 젓는 사람만이 발로 노 젓는 사람을 부를 수 있”다는 진술처럼 자연의 리듬을 아는 사람만이 발로 노 젓는 사람을 부를 수 있다는 사유로 확장되고 있다.

시적 화자가 그토록 찾고 싶어하는 검은 앵무새의 서식지인 ‘에덴의 동산’이라는 별칭을 가진 프랄린 군도 발레 드 메 국립공원에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서식하는 코코 드 메르 야자수가 있고 그 야자수 숲에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날아다니는 검은 앵무새가 산다.

결국 시적 화자가 그토록 찾고 싶어 하는 검은 앵무새는 태곳적 원시림과 원시 생물들이 살던 세계이다. 그래서 마지막 연에서 "​당신은 검은 앵무새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며 살던 경쟁과 약탈이 존재하지 않던 문명 이전 시대로의 환원을 의미한다.

임경묵 시인의 이번 시집의 사유는 신동엽 시인의 시론에 등장하는 원수성의 세계에 맞닿아 있다. 이번 시집은 문명의 이기에 지쳐가는 현대인들을 향해 문명 이전에 있었던 원수성의 세계에 대한 가치 환원에 대한 질문의 연장선상에 있다.

봄바람은 불고

벚꽃은 흩날리고

스티로폼 조각은 골목을 굴러간다

피자 배달 오토바이가

스티로폼 조작을 툭 치고

골목 속으로 사라진다

떨어져 나간 스티로폼 한 귀퉁이가

골목을 굴러간다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스티로폼 조각도

핑그르르 돌다가

다시 골목을 굴러간다

피자 배달을 마치고 골목을 나오던 오토바이가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스티로폼 조각을

정면으로 밟고 지나간다

스티로폼이 파삭 부서진다

그 속에서

스티로폼 흰 알갱이들이 무수히 태어난다

골목을 빠져나가는 오토바이 뒤를

좋다고 따라가는

흰 알갱이들........

봄바람은 불고

벚꽃은 흩날리고

스티로폼 흰 알갱이들이

일제히 과속방지턱을 튀어넘어

골목 밖으로 굴러간다

-​「꽃피는 스티로폼」 전문

「꽃피는 스티로폼」시에 등장하는 주요 시어는 벚꽃, 봄바람 그리고 스티로폼, 골목, 오토바이 등이다.

“봄바람은 불고/벚꽃은 흩날리고/스티로폼 조각은 골목을 굴러간다/피자 배달 오토바이가/스티로폼 조각을 툭 치고/골목 속으로 사라진다”

자연물로 등장하는 시어는 봄바람, 벚꽃이다. 그리고 문명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시어는 스티로폼, 피자 배달 오토바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즉 봄바람과 벚꽃이 피는 골목에 갑자기 점령군처럼 들이 닦친 오토바이가 스티로폼을 툭 치고 지나가면서 골목은 봄바람과 벚꽃이 피는 자연이 지배하던 순환론적 시간에서 온통 스티로폼 조각들로 가득한 문명이 지배하는 직선론적인 시간으로 이동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봄바람은 불고/벚꽃은 흩날리고/스티로폼 흰 알갱이들이/일제히 과속방지턱을 뛰어 넘어/골목 밖으로 굴러간다”는 묘사로 끝맺고 있다. 즉 여전히 우리는 자연의 시간을 사는 동시에 스티로폼 흰 알갱이들이 과속방지턱을 뛰어넘어 골목 밖 대로로 상징되는 문명속으로의 이동을 예시함으로서 자연과 문명을 대비해서 보여준다.

원수성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의 사유는 「새들의 나라」에 나오는 “새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있었네/그때는 총칼도 탱크도 전투기도 미사일도 핵무기도 몰랐고/정부도 국경도 난민도 없었지”라는 구절에서 더욱더 구체화된다.

또 「죽은 금붕어」에 나오는 “쉿,/지금은 플라스틱 조가비들이/텅 빈 어항에 앉아/정교하게/공명통을 조율할 시간/”, 「검은 개의 기분」에 나오는 “검은 개가/갑자기 벌떡 일어나 갯벌을 향해/컹컹 짓는다/”, “목줄에 묶인 채/ 맨발로 서서/ 파도의 잔해가 주름마다 먹먹한 갯벌을 바라보는 검은 개의 기분은/” 등에서도 엿볼 수 있다.

「죽은 두꺼비」에 등장하는 애인은 원수성의 세계를 동경하는 사람으로 제시된다. “나는 도깨비다/그냐가 좋아하는 제비꽃도 아니고, 그녀가 좋아한느 부여 사람 신동엽도 아니고, 그녀가 좋아하는 파랑새도 아니고/도깨비인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도깨비는 말 그대로 경계에 있는 사람 정도로 해석된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저 울퉁불퉁 거뭇거뭇한 두꺼비를 잡아먹고/제비꽃 옆에 누워/강물에 어룽대는 달빛 바라보며 가물가물하다 죽어 버릴까”라는 진술을 통해 경계에서 벗어나 자연의 시간에 대한 향수를 드러낸다. 이러한 원수성의 세계를 향한 시적 사유는 다른 시편들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시인이 그리워하는 원수성의 세계는 우리의 삶속에 녹아있는 문명의 언저리에서 시작해서 어린 시절 가난했지만 엄마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던 단란했던 가족의 행복으로 자연스럽게 연계되고 있다.

어머니가 신고 다니는 양말은

일명 무지개 양말인데

이 양말은 보푸라기가 참 많습니다

사실, 보푸라기는

무지개 새순들이어서

어머니 발을 비밀리에 푹신푹신 받쳐 주었던 겁니다

발을 부드럽게 받쳐 주니까

어머니는 이번 추석 대목 장사도

거뜬히 해낸 거구요

수돗가 한편

커다란 다라이에서 물장구치는 어린동생들과

하하호호하며

어머니가 양말 목덜미에 비누칠을 합니다

양말은 하---간지러워 잠깐씩 까무러치는데

이때 비눗방울이 양말 속 무지개를 슬쩍 속에 가두고 잠깐씩

무지개 흉내를 내기도 하죠

어머니 생일에

나와 동생들이 선물한 무지개 양말은 빨랫줄에 잠시 밝게 젖어

있다가

아침이면 다시

말랑말랑 일곱 색깔 무지개로 뜨겠지요

어머니 볼 넓은 발이

또 해종일 즐거울 테구요

어머니는 솥에서 따뜻한 물 한 동이를 길어와

다라이에 천천히 부으며

목욕은 뒷전인 채

비눗방울 놀이만 하는 동생들에게

다정하게 물으셨죠

누가 오늘 아침 엄마 양말 속에 무지개를 넣었을까?

저요! 저요!

-「무지개 양말」 전문

「무지개 양말」이란 시에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엄마의 양말에 난 보푸라기와 비눗방울 놀이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면서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던 시절의 무지개를 떠 올린다.

“목욕은 뒷전인 채/비눗방울 놀이만 하는 동생들에게/다정하게 물으셨죠//누가 오늘 아침 엄마 양말 속에 무지개를 넣었을까?//저요! 저요!” 비록 가난했지만 엄마의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했던 시간은 시인이 되돌아가고 싶은 원수성의 세계에 닿아 있다.

학생:

아빠는 통일이 먼저래요. 엄마와 이혼한 지 십 면도 더 됐는데, 며칠 전에도 예고 없이 또 찾아와 흩어진 가족을 합치자는 거예요. 늘 이런 식이죠. 우리는 헤어져 살라고 법원에서 결정한 가족인데 이게 다 아빠 때문인데, 어떻게 통일하자는 말을 아빠가 할 수 있어요?

학생생활교육위원A:

점심시간에 무단 외출해 길 건너 성당 담벼락에서 몰래 담배를 피운 게 올해 몇 번째인지 알고 있나요? 흠흠, 제가 말씀드릴까요? 세 번째입니다. 학생인권 생활규정 3조 8항을 보면 교내봉사 다음은 사회봉사, 사회봉사 다음은 등교 정지, 등교 정지 다음은 아웃, 아웃입니다.

학생:

가족의 탄생 이후 아빠와 엄마의 평화, 아빠와 나의 평화, 엄마와 나의 평화는 없었어요. 형과 아빠의 평화, 형과 엄마의 평화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고요. 아빠는 통일이라는 말을 무슨 종교처럼 생각해요. 전 평화를 원해요. 성당 담벼락에 기대어 피우는 담배 한 개비 같은 평화 말이예요.

학생생활교육위원B:

세계의 십자가가가 추락하지 않게 오늘도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마리아를 생각해 보세요. 한껏 빨았다가 뱉어 낸 담배 연기가 그 갈라진 혓바닥으로 순결한 마리아의 목덜미를 핥고 지나가는 건 좀....

학생:

엄마가 또 재혼한대요. 내년에 제가 대학에 들어가려면 돈도 필요하고......재혼은 엄마에게 가장 쉬운 돌벌이거든요. 어떻게,

어떻게, 제가

인간적으로 담배를 안 피울 수 있겠어요?

-「평화통일기반 구축법」

「평화통일기반 구축법」이란 시는 결국 행복은 이 문명사회의 최소 단위라고 할 수 있는 가정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유가 녹아있다.

“점심시간에 무단 외출해 길 건너 성당 담벼락에서 몰래 담배를 피운” 학생이 학생생활교육위원회에 나와 가정 해체의 주범이었던 아버지의 평화 구축 주장과 결국 생활고 때문에 어렵게 아버지한테서 놓여난 엄마가 또다시 재혼을 선택하는 상황이 제시된다. 뭔가 분명 잘못된 이 상황을 해결할 대안이 없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학생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가족 해체 정황을 아주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이를 통해 경제적 가치 평가라는 문명의 핵심 구도 안에서 인류 최초의 안식처였던 가족의 해체 그리고 또 다른 가족의 탄생을 예고한다. 결국 가족의 의미는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해 주는 치유 회복의 기능을 상실한 형식적인 공간으로만 제시된다.

몇편의 시편들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임경묵 시인은 이번 시집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를 통해 문명사회로의 진입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온 소중한 가치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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