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산에서 바라본 대전시 전경.
보문산에서 바라본 대전시 전경.

[충남일보 김기랑 기자]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는 ‘남아선호’ 사상을 기반으로 한다. 태아의 성을 감별할 수 있게 된 1970년대부터 남아에 쏠린 성비 불균형이 본격적으로 심화되기 시작했으나 시대가 바뀌며 이러한 경향은 자연스레 완화되는 추세였다.

하지만 성평등과 저출생 등이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한 현 시대 상황 속에서도 대전 지역은 여전히 남아선호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시대착오적인 현상이 지역의 혼인율과 출생률 감소에 더욱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통계청의 ‘시도 출산순위별 출생성비’ 자료에 의하면 2020년 기준 대전 지역의 셋째아 이상 출생성비는 120.1명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같은 해 전국 출생성비는 106.6명으로 120명대를 초과한 지역은 대전이 유일했다.

출생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수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값이 올라갈수록 여아 대비 남아가 많이 출생했음을 뜻한다. 성별에 대한 선호 없이 자연적으로 아이를 낳았을 때 나타나는 생물학적 정상 성비는 103~107명 선이다. 첫째·둘째아 출생성비는 정상 수치인 데 반해 셋째아 이상부터 급증한다는 것은 통상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을 선호·선택했음을 방증한다.

대전 지역의 이러한 경향은 비단 해당 년도에만 드러난 것이 아니다. 대전의 셋째아 이상 출생성비는 지난 2014년과 2018년에도 각 120.5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으며, 2007년 처음으로 100명대로 감소하기 이전에는 최고 296.9명(1990년)과 최저 126.2명(2004년) 등 지속적으로 최상위 혹은 중상위권을 유지해 왔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전국 셋째아 이상 출생성비가 정상범위로 떨어진 데 반해 역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다.

통계청에 의하면 최근 10년간 전국 셋째아 이상 출생성비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0년 기준 106.7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해 전체 출생성비(104.9명)와도 거의 일치해 남아선호 사상이 사라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같은 해 셋째아 이상 출생성비에서 대전(120.1명)이 최고 수치를 찍은 데 반해 최저 지역인 울산은 87.7명 선이었으며, 타 시도 역시 97.2명~119.8명 사이 값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한 지역에서의 이러한 높은 출생성비가 혼인율과 출생률에 모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행한 ‘세대효과와 출생성비가 저출산에 미치는 영향’ 자료에 따르면 출생성비가 증가할수록 자녀가 있을 확률이 낮아지고, 자녀가 있을 확률 감소는 혼인의 감소로 이어진다. 즉 높은 출생성비가 저출생과 혼인율 감소를 모두 촉발하는 것이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출생성비가 높은 지역에서 태어난 여성일수록 남성 중심적인 성 규범을 회피하기 위해 결혼·출산을 지연 또는 기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성 중심의 성 규범을 자신이 겪어야 할 상황으로 인식해 결혼·출산을 꺼리게 되고, 이는 당연스레 혼인율과 출생률 감소로 이어진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출생성비가 높은 지역의 여성들은 자녀가 있을 확률뿐만 아니라 혼인했을 확률도 유의미하게 낮다”며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높아진 반면 혼인·출산 후 예상되는 역할에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전 지역은 높은 셋째아 이상 출생성비와 여성에 쏠린 육아휴직자 비율, 남성에서만 높은 여가만족도 비율 등으로 인해 ‘성평등 지수’ 8개 분야 중 가족 부문에서 3년 연속 전국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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