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개최한 제1회 곽한일 의병장 추모행사에서 이태규 아산시 부시장이 인사말을 하고있다.
12일 개최한 제1회 곽한일 의병장 추모행사에서 이태규 아산시 부시장이 인사말을 하고있다.

 [충남일보 유명환 기자] 충남 아산시 송악면 소재 ‘애국지사 곽한일 의병장 송덕비’에서 12일 관내 유림과 후손들이 참여한 가운데 ‘제1회 곽한일 의병장을 기리는 추모제’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추모제 행사는 이태규 아산시 부시장, 이명수 국회의원 등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곽 의병장의 주요 약력 및 활동 사항을 보고하는 등 의병장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조촐하면서도 엄숙하게 진행했다.

곽노항 청주곽씨 아산종친회장은 ‘오늘 추모행사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를 드린다’며 ‘특히 이흥복 성균관 원로님과 유림들에게 특별히 감사를 드린다’면서 ‘이제야 첫 추모제를 올리게 됨을 후손의 부덕임을 머리숙여 자책하며 앞으로는 유림들과 함께 곽 의병장의 업적과 공적을 널리 알리는데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곽 의병장은 아산 송악 출신으로 1896년 의병 항쟁기에 안성방면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일본군과 진위대(鎭衛隊)가 합세하여 공격해 옴으로써 아산·예산·청양 등지로 잠행하여 동지들을 규합하는데 힘썼다.

1906년 5월 의병 400여명과 함께 홍주성에 진입하여 돌격장, 소모장(召募將)으로 활약하며 일본군과 진위대를 격퇴하였다. 또 곽 의병장은 의병 수백명을 예산일대에 동원, 11월20일을 기해 예산읍을 총공격하기로 결정하였으나 기밀이 누설되어 11월17일 일본 헌병대에게 기습을 당하고 말았다.

체포된 곽 의병장은 공주경무청에서 경성평리원으로 이감되는 등 갖은 고초를 겪다가 1907년 (고종44) 7월3일 고종이 종신 유배형을 승인하여 8월에 전남 신안군 지도(智島)로 유배되었으나 1912년 풀려났다.

한편, 곽 의병장은 1977년 건국공로포장과 1990년 애국장에 각각 추서되었다. 또한 의병장시절 사용하던 장도(長刀)가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과 천안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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