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 시인 · 두원공대 겸임교수

 ‘대중교통 길 찾기 결과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라고 네이버 길 찾기가 안내하는 곳, 자전거로는 35시간여가 소요된다는 곳, 자동차로도 5시간 15분이나 소요되는 곳에 가기 위해 저는 약속한 날보다 하루 전에 출발하였습니다. 해남에 기거하는 H 시인 댁에 가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감염에서 격리 해제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으므로 무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늦은 밤 광주에 도착하였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자 여행 기분이 났습니다. 올해 처음 보는 전어회에 가볍게 술 한잔을 했습니다. 전어회를 먹자 저녁까지 회복되지 않았던 후각과 미각이 제대로 살아났습니다. 여행 기분이 살포시 일었습니다.
  등단 40여 년이 넘은 시인, 문학청년 시절 교과서처럼 탐독했던 시인, 여전히 시인들의 우상으로 존재하는 시인을 만난다는 일은 여간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보다 동행자의 기분은 더없는 긴장과 설렘이 함께였을 것임을 짐작합니다. 
  동행하는 분과 장성에서 조우하고 광주에서는 서로 엇갈리기도 하면서 일행은 해남으로 향했습니다. 문학이, 시가 시인보다 서로를 먼저 알아보게 하고 몇 번의 만남만으로 들판에 자라기 시작하는 풀들처럼 우거지게 만든다는 것만큼 멋진 일은 없습니다. 
  기실 시인이 우거진다는 일은 시와 시의 정신이 앞서는 일일 것입니다. 일상의 일은 뒤로 미룬 채, 만남을 우선순위로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태생이 다르고 삶이 다른 사람이 시인이라는 풀이거나 나무가 되어 풀숲을 이루고 숲을 이루는 일이겠기 때문입니다. 

꽃들의 구역에서
가장 생생한 아픔은
너와 내 뿌리가 맞닿은 것을 볼 수 없다는 것
서로 얽히고설켜도
둘의 뿌리를 섞을 수 없다는 것이다
너와 내가 꽃으로 피어 마주 보는 시선이
뜻하지 않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다
너의 향기도 너의 속삭임도 바람에 흩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더 많이 쳐다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침묵하고
더 많이 주고 싶어지는 마음
세상에 함께하는 시간에 우리는 살고
살아 있고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뿌리와 뿌리를 맞대고 연리지가 되기까지
자유를 향하여 달려가는 네 도주의 흔적을 따라
나는 또 피어나고 피어나고
피어나고

톡 톡 톡 떨어지는 낙화는
문득 네 꿈속에서도 또 다른 뿌리를 내리고

ㅡ진란 시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

  진란 시인의 시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글과 시가 섞이지 않지만 시라는 가지를 맞대고 이 세계를 쓰는 일은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목한 부부나 연인으로만 국한하여 진란의 시를 읽을 필요는 없겠다 싶습니다. 
  서로 맞닿지 못하거나 않거나 아랑곳없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아는 까닭입니다. 만남이란, 관계란 ‘뜻하지 않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많으므로 어려운 일이 됩니다. 대부분 반복되는 그런 일들 사이에서 만남은 취소되고 관계는 끝납니다. 
  영월, 강진, 해남, 장흥을 지나치며 월출산 두륜산 억불산을 보았습니다. 하늘을 치받고 있는 기암괴석 봉우리의 도도한 위엄이 장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는 진란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란은 사랑하는 법을 아는 시인입니다. 관계는 어떻게 맺어지는 것인지를 압니다. 관계는 멈춤이 아니라 움직여야 합니다. 핀 꽃을 쳐다보고 듣고 침묵하고 마음을 더 많이 주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함께 하는 시간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며, 피어나고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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