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 한남대 총 동문회장·(전)대전대신고 교장

길가의 가로수도 계절이 소설(小雪)을 지나면서부터 잎새를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 채 빈 몸으로 햇볕과 바람을 맞고 있다. 

나무는 이른 봄철에 해동(解凍)되어 골짜기의 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겨울잠에서 깨어나 가지마다 새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새잎을 가꾸고 예쁜 꽃이 피어나면 벌과 나비를 불러 모은다. 여름철 내내 비바람과 천둥 번개를 물리치고 자기 분신인 열매를 맺는다. 가을철로 접어들면 자기 몸을 화려한 단풍으로 바꾸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봄부터 늦가을까지 가꾼 열매를 내어준다. 제 분신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한 뒤에는 몸을 장식하고 있던 잎새까지 떨구고 소명을 다한 성인처럼 나신(裸身)으로 겨울을 맞는다. 그러면서도 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에게 제 몸까지 드려 겨울을 따뜻하게 나도록 만드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쓸면서 이러한 나무의 일생을 생각해보았다. 사람이 제 몸만 위하고 자기본위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나무처럼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겠다. 나무는 다투지도 않는다. 서로 비껴가면서 햇볕을 받고, 자신을 가꾼 뒤에는 잎새와 꽃과 열매 그리고 제 몸까지도 온전히 남에게 내어준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안타까운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고, 그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많아 우리를 애태우고 있다. 

매년 10월 마지막 날에 주로 영미권에서 벌어지는 축제인 핼러윈 데이가 최근 들어 점점 국내에서도 젊은이들이 즐기기 시작했다. 서울 이태원을 중심으로 핼러윈 데이 행사가 열리는 10월 마지막 날이면 구름처럼 많은 인파가 모이고 있단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서 모임을 하지 못하다가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자 방역 당국이 제한 규정을 해제하게 되었다. 

이에 지난달 29일에는 10월의 마지막 주말을 즐기기 위해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핼러윈 축제를 벌였다. 좁은 비탈길에서 앞 사람이 넘어지며 160명 가까운 생명이 참사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이 참변을 당한 엄청난 재난이 일어났는데도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여·야가 서로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 
  
사람의 생명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우리의 목숨을 어떤 것과 바꿀 수 있겠는가. 더구나 우리의 젊은이들이 떼죽음에 이른 원통한 사건을 정부에서는 신속하고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 과정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마을을 금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느 집에서든지 새 생명이 태어나면 친·인척과 온동리가 모두 다 기뻐한다.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하여 한 사람의 성인으로 기르기 위해 부모는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다. 아기야말로 집안의 소중한 보배다. 국민이 변고를 당하면 당국자는 먼저 그 가족을 찾아 위로하고, 유족과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그들의 요구를 경청해야 한다. 그 뒤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은 돕고,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원인을 규명하고 법령과 제도를 정비해서 다시는 고귀한 목숨이 희생당하는 일이 없도록 대비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동안 정부의 태도가 분명하지 않자, 야당에서는 국정조사를 요구하면서 여·야가 정쟁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이 있어야만 국가가 있고, 국가가 있어야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도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일을 보면서 자신과 자기 집단의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나라를 맡길 수 있겠는가.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찾아가 위로하고,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 지난날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의 정치적인 손익만을 따져서 편가르기하고 싸우기만 하는 정치인에게는 앞으로 국민이 엄중히 심판하여 정치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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