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섭/주필
임명섭/주필

죽음의 종류를 열거해 본다. 압사(무거운 것에 눌려서 죽음), 역사(차나 기차 등 바퀴 달린것에 치여 죽음), 요사 또는 요절(젊어서 일찍 죽음), 유사(감옥에 갇혀 고문등으로 고생하다 죽음), 액사 또는 교사(목을 매어 죽음), 익사(물에 빠져 죽음), 자연사 또는 평온사(마지막까지 인간다운 존엄함을 잃지 않는 품격 있는 죽음)으로 의미하기도 한다.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죽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일하다 죽는 사람, 자다가 죽는 사람, 수영하다 죽는 사람, 운전하다 죽는 사람, 죽으려다 죽는 사람, 놀다가 죽는 사람, 밥 먹다 죽는 사람, 당신은 죽음을 선택할까? 

태어남이 축복이 아니듯이 죽음 또한 슬픔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가장 사람답게 하는 가치일 뿐이다. 육신이 죽지 않는다면 거만한 영혼이 날뛰고 다닐 것이다. 얼마 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 다수의 인파가 뒤엉키면서 300명이 넘는 압사 사상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 

참사 당시 이태원에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3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골목은 보행로 폭이 4m 안팎으로 매우 좁은 구역임에도 현장 통제 및 통행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이 사고로 158명의 꽃다운 젊은이들이 사망하는 등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났다. 사망자 가운데는 외국인도 끼어 있었다. 중국·이란·미국·우즈베키스탄·노르웨이·일본·러시아·호주·스리랑카 등 14개국 26명도 함께 피해를 입었다. 

서울 도심에서 이같은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은 502명이 사망했던 1995년 삼풍백화점 사고 이후 처음이다. 단일 인명피해 사고로는 2014년 세월호 침몰로 안산 단원고 학생 등 304명이 사망했고 142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도 있다. 

이처럼 사람들의 죽음 또는 사망은 생명체의 생명이 끊기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꽃다운 젊은 생명이 한 순간에 많은 인원이 숨졌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죽음은 생명체의 모든 기능의 영구적으로 정지돼 완전히 생명체를 잃어버리는 것을 말 한다. 

그래서 죽음을 영면이라 하는 등 잠에 비유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태원 참사는 너무 안타깝다. 죽음을 놓고 큰 인물들이 죽으면 중국은 천자(황제)의 죽음으로 붕어(崩御)라 한다. 우리도 임금, 왕(王)이 임종을 맞으면 '승하하셨다'고 했고, 지금은 대통령의 죽음은 서거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큰 스님의 죽음은 열반,입적이라 하고,천주교에서는 추기경 같은 분의 세상 떠나심을 선종이라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죽음을 '소천'이라 하는데 이는 '하늘이 부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음' 이란 의미이다.  

여하튼 '죽음, 사망, 임종'에 대해서는 '사자'의 신분, 지위, 또는 종교 등에 따라서 사용하는 말이 조금씩 다르고 여러 가지 용어가 있다. 사람의 죽음을 놓고 운명하셨다, 작고하셨다, 별세하셨다, 영면하셨다' 눈을 감으셨다는 등 표현도 다양하다, 

그리고 숨을 거두셨다, 세상 떠나셨다'등에서 부터 '죽었다, 사망했다, 쓰러졌다'란 말에서 심지어 '뒈졌다 '골로 갔다'라는 끔직한 협박성 말도 있는데 이는 '죽여서 산골짜기에 묻어버리겠다'는 뜻이다.

여러 가지 '죽음'을 나타내는 표현중에 보통 많이 사용하는 말은 아마 '돌아가셨다'인 것 같다. 

'돌아간다'는 것은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 간다'는 말이니 '귀천'은 '하늘 나라, 즉, 우리 인간이 어머니의 배를 빌려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살았던 원래 본가로 되돌아 간다는 말이다. 사람은 사람답게 늙고,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죽는 것으로 마치는 것이 삶이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는 그럴 사이도 없이 안타깝게 꽃다운 생명을 순간에 뺏어갔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영정도 없는 빈소에 조문하는 사례를 남기 기도 했다. 사람의 죽음에는 그 원인에 따라 자연사와 사고사가 있고, 자살과 타살이 있다. 

현행법상 자살행위는 범죄가 아니므로 자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치더라도 처벌되지 않는다. 하지만 타인으로 하여금 자살을 하게하거나(자살교사) 타인의 자살을 도와준 행위(자살방조)는 처벌받게 된다. 

사람은 누구든 언젠가는 죽음이 문밖에서 노크할 때가 온다. 

때문에 ‘아니 벌써’를 외치지 말고 조용히 문을 열어 맞이할 수 있게 준비를 하며 살아가야 한다. 자연스럽게 죽지 않으면 죽는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품위 있는 죽음은 결국 나의 몫이 아닐까?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일생에 한번 밖에 없는 죽음이지만 이태원 참사는 너무나도 안타까워 생각만들어 슬픔을 참으려 해도 참아지지 않음은 어쩔 수가 없다.

사람의 죽음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다. 가족들의 품에서 품위를 유지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누군가의 특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꽃다운 이들의 한 맺친 죽음을 함께 느끼는 많은 사람들은 그 눈물과 슬픔이 진심으로 공감을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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