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섭/주필
임명섭/주필

세상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느낌이 든다. 타인으로 부터 의뢰를 받고 살인을 대신 해주는 일을 한 사람을 청부 살인범아라고 한다. 외래어로는 킬러, 히트맨 등으로 불린다. 명칭에는 문제가 있는데. 당연히 살인죄이고 그에 맞게 최소 10년이상 징역을 받거나 최대 사형이 선고되는 중범죄이다. 

살인 청부를 한 사람도 교사범으로 감방에 간다. 교사범은 실행범과 동일한 형량을 받는다. 치안이 나쁜 국가에서는 살인청부의 위협에서 안전하지 못하다. 중남미의 마약 카르텔들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대놓고 희생자들을 참수해 시체를 길거리에 던져놓는 등 이런 짓거리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소말리아 등 치안이 막장인 나라에서는 처벌이 사실상 이뤄지기 힘들어 100달러도 안 되는 싼 돈으로 청부살인을 할 사람을 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득시글한가 하면, 심지어는 권력으로 사람을 윽박질러 돈 한 푼 안주고 청부살인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영국 버밍엄시립대학 연구진이 2014년 발표한 논문 ‘영국의 킬러들’은 청부살인에 대한 최초의 학술적 탐구였다. 1974년부터 2013년까지 영국에서 벌어진 청부살인 27건을 분석한 결과, “영화와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주목을 끌었다. 

전문 암살조직이 치밀하게 증거를 은폐하는 범행으로 묘사되던 것과 달리, 현실의 청부살인은 주먹구구식이다. 산책로나 쇼핑몰처럼 목격자가 없을 수 없는 곳에서 벌어지곤 했다. 대가는 27건 평균 2500만원(최고 1억6000만원)이니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동기도 사업 분쟁이나 치정이 대다수일 만큼 대단하지 않았다. 

논문에은 킬러를 네 부류로 나누었다. ①살인이 처음인 ‘초보자’ ②살인이 직업이라기엔 미숙한 ‘아마추어’ ③나름의 경력을 가진 ‘직업 살인범’ ④법의학 추적을 따돌릴 만큼 능숙한 ‘마스터’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잊을 만하면 청부살인 사건이 터지곤 한다. 

2002년 영남제분 회장 부인이 사위의 불륜 상대라고 근거 없이 의심하던 여대생을 청부살해했다. 1억7000만원에 동원한 ‘킬러’는 자기 운전기사인 조카와 그를 통해 섭외한 사채업자였다. 2014년에는 서울 강서구 건물주 피살 사건의 범인은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었다. 

추궁 끝에 드러난 살인 청부 범인은 10년 지기이자 피해자와 금전관계가 얽힌 서울시의원이었고, 살인의 대가는 7000만원을 받았다. 천안에서도 2014년 4월, 두 명의 범인이 5천만원의 대가를 받고 청부  60대 남성을 경기도 양주시 일원 야산에서 살해 후 암매장한 혐의로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서 각각 25년과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청부살인은, 아무리 봐도 직업 살인범이나 마스터급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청부살인의 명맥을 잇는 사건이 또 터졌다. 이번 서울 강남의 주택가에서 일어난 납치살해극은 가상화폐를 둘러싼 청부살인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사람을 죽이는 건 심플해. 애 키우는 것 보다”라고 말하는 넷플릭스 영화 속 ‘길복순’ 같은 전문성은 보이지 않았다. 영국의 킬러 기준에 비춰 보면 어설펐는데, 아직 영화 같은 세상은 아니라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세상이 점점 영화처럼 돼가는 것 같아 걱정이라 해야 할지, 헷갈리면서 왠지 불안해지는 사건이 우리 주변에서도 터지고 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40대 여성이 납치된 뒤 살해를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은 경찰조사 결과 방범 카메라에는 한 남성이 바닥에 주저앉은 여성의 몸을 붙잡고 강제로 끌어당겨 차에 태우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었다고 한다. 

당시 남성 2명이 여성을 폭행하며 실랑이를 벌인 뒤 차에 태워 사라졌다는 112신고도 접수됐다. 목격자들은 “살려주세요”라는 여성의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불과 1분여 만에 벌어진 일이다. 피해자는 납치된 지 불과 7시간여 만인 30일 대전 대청댐 인근 야산에 암매장 된 것을 경찰이 찾아냈다. 

마치 영화 ‘범죄도시’를 연상케 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도 피해자의 재산을 노린 청부살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몸값’을 받아내기 위한 납치에다 인질 살해까지 유사 사건이 재발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사건 역시 가상화폐와 관련된 계획범죄임이 드러났다. 

코인 투자 피해자가 자기 인생을 구렁텅이로 내몬 가상화폐 관련자를 해친 사건으로 보고 있다. 욕망의 용광로 같은 코인 광풍이 우리 사회에 범죄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 코인 사기 피해자가 수십만 명에 이르고 있어 걱정이다. 

언제 어디서 유사 사건이 발생할지 몰라 조마조마하다. 부녀자를 노린 우발적 범죄는 아니었지만 시민들은 서울을 비롯 전국의 밤길이 두렵기만 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늘고 있는 강력 범죄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민생치안이 더 정교하게 이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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