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일보 이연지 기자] 차가운 겨울밤 아래 하나둘 불이 켜지고, 어둠 대신 따스한 빛이 채운 자리. 대전 유성구가 개최한 '2025 유성온천 크리스마스 축제'는 고요히, 그러나 깊게 스며들었다.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사흘간 열린 축제는 그동안 온천로 일대에서 진행되던 무대를 유림공원으로 옮기며 공간의 결이 달라졌다. 넓어진 풍경, 느려진 걸음, 길어진 머무름. 서두르던 일상은 여기에서 잠시 숨을 고르게 했다.
첫날 저녁 6시 온천로 워터스크린 맞은편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트리 앞. "셋, 둘, 하나" 카운트다운과 함께 불빛이 켜지는 찰나, 공기를 가르며 터져 나오는 탄성과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득 찼다. 소원을 말로 하지 않아도, 저마다의 마음은 이미 불빛에 닿았다.
공연은 발걸음을 붙잡는 방향으로 흘렀다. 동편 광장에서는 가수 박준현, 김지원, HYNN(박혜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하늘 위로는 드론 라이트 쇼가 화려히 장면을 덧댔다.

이튿날에는 영락, 이덕현, 컬타, 맨인블루스, 58D가 관객들과 마주했다. 공연자들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얼어붙은 마음을 따뜻하게 녹였다. 마이크의 미세한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자,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감는 이들이 늘어나며 손뼉보다는 호흡으로 하나가 됐다.
마지막 날에는 이우빈과 자락 등이 무대에 올라 계절의 끝을 매만졌다. 길을 따라 짙게 퍼지는 멜로디에 시민들은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였다. 이내 현장은 차분하지만 깊은 몰입감으로 채워졌다.
서편 광장에 설치된 6m 높이의 거대한 트리 앞에서는 사람들이 잠시 침묵했다. 카메라를 들기 전, 모두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각자의 시선에 담아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또 샹젤리제 거리를 연상케 하는 대학로의 와인잔 조명은 도시의 숨결을 흔들고, 문화원로의 스트링 불빛은 걷는 발끝마다 밤의 체온을 감쌌다.

줄지어 선 크리스마스 마켓과 푸드트럭은 조용히 불을 밝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간식, 작은 소품, 체험 부스에도 소음 대신 온기가 맴돌았다. 새롭게 마련된 '유성 뱅쇼 라운지'에서는 달큰한 향이 주변을 채우고, 언 손을 감싸 쥐는 찻잔이 오래 머물렀다.
대형 에어돔 '유성별빛쉼터'는 낮에는 잔잔한 휴식 공간으로, 밤에는 숨 쉬는 별처럼 조명을 품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순간이었다.
친구와 함께 들른 한 주민은 "크리스마스가 와닿는 건 오랜만이었다. 지나치는 12월이 아니라, 지친 하루 끝에 선물 같은 하루였다"며 "날씨는 추웠는데, 자꾸만 머물고 싶어졌다. 겨울이 이렇게 따뜻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아이 손을 잡고 거닐던 학부모는 "멀리 여행 가지 않더라도, 동네에서 연말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형형색색의 조명을 보고만 있어도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며 "집에 가기 아쉬워서 몇 바퀴를 더 돌았다. 다음에 또 오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