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명균 칼럼] 대통령 잔혹사

2025-02-26     우명균 기자
내포취재본부장

세계 정세는 급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국은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다. 현직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촉발된 작금의 상황은 중대 국면을 맞고 있다. 특히 탄핵을 둘러싸고 여실히 노정(露呈)된 진영 논리와 국론 분열은 여간 우려스럽지 않다. 역사는 항상 진보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다양성과 스펙트럼은 무시된 채 퇴보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고 착잡할 따름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3개월 넘는 '대장정'을 마치고 25일 마무리됐다. 과거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2주 뒤 선고됐다는 점에서 헌재가 3월 중순쯤 결정을 선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예단하기 어렵지만 헌재가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가 타당해 윤 대통령이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을 했다고 인정할 경우 대통령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한다.

반면 탄핵소추 사유가 인정되지 않거나 헌법·법률 위반이 중대하지 않다고 보면 탄핵소추를 기각하고 윤 대통령은 즉시 직무에 복귀한다.

비단 현직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구속된 이번 사태 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들의 뒤안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파란만장했다. 하야, 살해, 투옥, 자살, 탄핵에 이르기까지 '잔혹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는 부통령 자리를 야당에 빼앗길 것을 우려해 선거를 조작했다. 이는 전국적인 시위를 촉발시켰고 결국 하야하고 망명의 길을 선택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거의 20년 동안 대한민국을 통치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시각이 갈린다. 리더십이나 경제 발전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반면 독재와 장기 집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는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살해되는 비운을 겪었다.

박 전 대통령의 암살로 인한 권력 공백은 전두환 육군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빌미가 됐다. 군을 장악한 그는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했고 1980년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다음 대선에서는 그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역시 쿠데타의 핵심 인물인 노태우 씨가 당선됐다. 이들은 각각 임기를 마치고 내란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17년 형을,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둘 다 1997년에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풀려 났다.

2003년에서 2008년까지 재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가족과 측근들을 표적으로 한 대규모 뇌물 수수 혐의 조사를 받았다.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되고 있던 시점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국민들을 비탄에 잠기게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경선 중 불거진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2018년 초 재개되면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보석 석방과 재구속 등을 거쳐 대법원에서 징역 17년형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2022년 6월 검찰은 건강 문제를 호소한 이 전 대통령의 형 집행을 정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됐다. 현직 대통령 신분에서 피의자로 입건된 첫 사례이자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 파면이 선고됐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이 촉발된 지 4년여 만인 2021년 1월 징역 20년형이 최종 확정됐다. 그는 특별사면으로 전직 대통령 가운데 최장 기간인 4년 9개월 간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영어의 몸에서 풀려 났다.

이렇듯 역대 대통령들이 겪었던 비극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명으로 얼룩진 역대 대선사는 국가의 발전적인 측면에서 국력 소모는 물론이고 후퇴를 자초했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구조적으로 보면 대통령제에 따른 제왕적 권력 집중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최근 여야 정치권에서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와 일맥상통한다.

지난해 12월 3일, 국민적 트라우마로 각인된 여의도 국회에 계엄군의 헬기를 또다시 보지 않으려면 만시지탄이지만 권력 분산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