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정지용의 문화유산 1부 - 유산 정지용

2025-05-14     충남일보

양경숙 국제한류학회 이사는 정지용을 “셰익스피어를 능가하는 위대한 작가”라고 말한다. 그의 고향인 충북 옥천은 문학적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그 가치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를 늘 안타깝게 생각하여 2025년 5월 15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지용제를 계기로 옥천의 문화와 관광, 지역경제를 아우르는 문화도시로의 가능성을 찾고자 충남일보에 연재했다. <정지용의 문화유산>시리즈는 제1부 ‘유산 정지용’, 제2부 ‘옥천의 가치’, 제3부 ‘세계적 문화관광도시 옥천’을 주제로 정지용의 문학적 내면과 그가 남긴 문화유산의 외적 가능성을 함께 조망하고 있다. 옥천을 문화자산으로서 ‘정지용 콘텐츠’가 가진 관광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을 찾아본다. 필자는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Stratford-upon-Avon)이 세계적 명소가 되었듯, 정지용 유산으로 옥천이 지역의 정체성을 살린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편집자주>

정지용.
그 이름 석 자만으로도 한 편의 풍경이 된다.
그의 시는 눈부시게 섬세하고, 슬픔마저도 아름답게 빚어낸다.

생가 인근에 설치된 정지용 상반신 조형물.

▲생애와 시대적 맥락
정지용은 1902년 충청북도 옥천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부터 언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던 그는 일본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다. 당시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억압 속에서도 지식인들이 새로운 사조와 문학 형식을 탐색하던 격동의 시기였다. 정지용은 일본 유학을 통해 당대 서구 문학, 특히 이미지즘과 상징주의 시학을 체득하였고, 그것을 토대로 한국 시문학에 새로운 미학을 도입하였다.

귀국 후 그는 경향신문 기자와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일하면서도 창작 활동을 활발히 이어갔다. 그의 문학은 1920~30년대 한국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고, 현대시의 지평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시라는 형식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킨 개척자였다.

그러나 광복 후 한국전쟁 발발 직전, 월북한 시인으로 낙인찍히며 문단에서 지워진 시간도 있었다. 정지용의 이름은 오랜 세월 동안 금기시되었지만, 1988년 해금 이후 그의 문학적 가치가 재조명되기 시작하였다. 이제 우리는 시대의 아픔을 품고도 언어의 순수성을 지켜낸 시인을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으로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정지용 생가.

▲문학사적 위치 
정지용은 한국 현대시를 본격적으로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시인이다. 그는 1930년 『정지용 시집』을 발표하며 한국 시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시집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닌, 언어와 이미지의 정교한 배치를 통해 시를 시각적 예술로 승화시킨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그의 시는 이전의 한시적 전통이나 민족주의적 경향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하였고, 서구 시학의 영향을 창의적으로 수용한 실험정신으로도 주목받았다.

특히 이미지즘과 상징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지용의 시는 ‘한국어로 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시’라는 평가를 받으며 후대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언어는 감각적이고 정제되었으며,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보이게 하는 시’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문학적 태도는 오늘날까지도 모더니즘 시의 기초로 자리 잡고 있다.

정지용문학관 입구에 전시된 밀랍으로 만든 전신상.

▲대표작과 시 세계
정지용의 시 세계는 언어의 순수성과 감각의 섬세함으로 대표된다. 그의 대표작인 「향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면서도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과 ‘존재의 뿌리’를 탐색하는 철학적 깊이를 담고 있다. “넓은 들엔 / 종달새가 울어 / 퍼져 나간 내음새를 타고” 같은 구절은 단어 하나하나에 이미지와 소리를 담아내며, 읽는 이의 오감을 일깨운다.

또 다른 대표작 「유리창」에서는 죽은 아이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절절한 슬픔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슬픔은 절제된 언어로 표현되기에 더욱 처연하고 아름답다. “유리창엔 / 비 / 어린 백묘(白描)의 / 기억처럼”이라는 구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정지용 특유의 표현기법을 보여준다. 그는 눈물 대신 침묵을, 비통함 대신 형상을 통해 슬픔을 전달하였다.

정지용은 시를 통해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 말하지 않은 것 속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시에는 과장이 없고, 언어는 정제되어 있으며, 감정은 깊지만 절제되어 있다. 이러한 문학적 태도는 ‘보여주는 시’, ‘묘사하는 시’의 원형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연과 고향, 상실과 시간, 종교와 영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를 섬세한 감각으로 다루었다. 시집 『백록담』과 미완의 작품들까지도 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기록이다. 정지용의 시는 단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그것은 시대를 넘어서도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며, 한국어의 아름다움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정지용의 시 '호수'.

▲지역작가로서의 유산
정지용은 충청북도 옥천이라는 작은 고장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시는 지역의 울타리를 넘어서 한국 현대문학의 흐름을 바꾸었다. 이는 단지 뛰어난 문학성 때문만이 아니라, 한 사람이 고향이라는 삶의 원형을 어떻게 시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정지용이 남긴 언어적 유산은 특정 지역의 자산이자, 동시에 한국문학 전체의 공공재이다. 오늘날 그를 지역문학의 틀에 가두기보다는, 지역이 길러낸 세계적 시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정지용이라는 이름은, 지역의 정체성과 문학의 품격이 어떻게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를 상징하는 귀한 사례이다.

그의 시가 지닌 본질은 ‘고향’과 ‘언어’에 대한 통찰로부터 비롯된다. 정지용은 옥천이라는 현실의 공간을 통해 정신적 고향을 형상화했으며, 그 고향은 단지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정체성과 기억의 뿌리였다. 그는 특정 지역에서 출발했지만, 그가 구현한 감성은 누구에게나 통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녔다. 그래서 정지용은 지역 출신 시인이지만, 그 울림은 전국적이고 시대를 초월한다.

또한 지역작가로서 정지용은 고향의 이름을 문학사에 올린 인물이다. 그 존재만으로도 옥천은 하나의 문화적 기호가 되었고, 이는 지역이 예술을 통해 정체성을 회복하고 스스로를 재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모델이다. 정지용은 고향을 대표한 시인이 아니라, 고향을 통해 한국 시의 본질을 발견하게 만든 시인이었다.

정지용은 지역이 배출한 문인이자, 지역이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다. 그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재확인하고 그 자산을 미래로 이어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정지용은 한 지역이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문학적 언어가 된 존재이다.

양경숙 국제한류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