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명균 칼럼] 새 정부에 바란다
3년 전 윤석열 정부 초기에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이 도입된 적이 있어 주목을 받았다.
도어스테핑은 공식 기자회견이 아닌 출근길에서 기자들이 대통령 등 주요 인사를 즉석으로 진행하는 인터뷰를 뜻한다.
언론과의 즉각적인 대화는 격식을 줄여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고 정부 정책과 관련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적지 않았지만 언론과의 마찰로 인해 6개월 만에 도어스테핑이 중단됐다.
이후 윤석열 정부는 일부 언론과 갈등을 빚거나 해외 순방에 특정 언론사를 배제하면서 언론관이 내내 도마위에 올랐다.
3년이 지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초에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예고 없이 영상기자실과 사진기자실을 잇따라 방문하고 구내 식당에서 격의 없이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눴다.
새 정부의 이런 행보는 언론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과연 이런 ‘언론 프랜들리’의 분위기가 앞으로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관심사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지 20여 일이 지났다. 이재명 대통령이 첫 내각 인선을 단행하고 본격적인 국정 운영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새 정부가 처해 있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금 한국은 정치, 경제, 외교, 안보, 사회통합 등 적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경기침체에다 고물가, 청년 실업, 부동산 불안정까지 겹쳐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우선 과제로는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와 경제난 극복을 꼽을 수 있다. 새 정부가 빠른 시일 내 경제 회복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국민의 삶의 질은 더욱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국제 정세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의 전쟁과 미·중 전략 경쟁에 따른 예측 불허의 국제 흐름, 미국과의 관세 및 대북 문제 등 국제 문제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정교한 외교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 정부에서 이런 난제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바탕으로 ‘잃어버린 3년’을 되찾고 위기의 대한민국을 다시금 도약시킬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새 정부의 공약 이행 문제도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대선 당시 유권자들이 공약을 눈여겨 보고 투표권을 행사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충청권의 입장에서 보면 세종시의 행정수도 완성과 대전·충남의 공공기관 이전 문제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지난 2002년 노무현 정부에서 수도권의 과밀화 해소와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됐던 이 현안들은 여전히 미완이다. 새 정부에서 공약을 한 만큼 반드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문제로 충청권의 민심이 사납다. 행정수도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해수부 이전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여론 수렴 과정이나 행정의 비효율성, 지역 갈등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국정 철학을 들여다 보면 해수부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라는 얘기는 없다. 특히 해수부 이전이 선례가 돼 다른 정부 부처 역시 이전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새 정부의 현명한 대안 마련이 시급한 사안이다.
새 정부의 주요 과제로 통합과 협치 문제를 빼 놓을 수 없다. 계엄 이후 진영 간 갈등은 탄핵 국면을 거치며 전례없이 극심하게 전개됐다.
정치 갈등은 세대와 남녀, 지역 갈등, 국론 분열로 번졌다. 대학가든, 거리든, 도로를 사이에 두고 편이 갈리는 이분법적 행태는 한국사회의 ‘민낯’을 보여 줬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통합과 광장의 정치가 절실하다. 특히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 갈 경쟁자이자 국정 파트너로 인식하고 야당과의 소통과 협치 노력 또한 요구된다.
개헌도 시급한 문제다. 윤 전 대통령 탄핵사태 후 현행 대통령제로는 나라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해결하기 위한 권력 분산형 개헌은 시대적 과제가 됐다.
고전적인 얘기지만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 했다. 민심을 외면하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 계엄으로 촉발된 전직 대통령의 탄핵을 비롯해 하야, 살해, 투옥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의 파란만장했던 잔혹사가 이를 방증한다. 부디 새 정부가 민심을 반영한 국정 운영으로 국민들로부터 평가받는 새 정부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