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명균 칼럼] 양치기 소년과 공공기관 이전
약속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약속은 지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약속을 저버리면 신의를 잃게 된다. 계속될 경우 주변 사람들은 꺼리게 되고 결국 멀어진다. 심지어 인연이 끊어질 수도 있다.
대선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후보들은 정책을 제시하고 유권자들은 표심으로 화답한다. 당연히 공약 이행을 전제로 한다. 공약이 빌 공(空)자 공약(空約)으로 치부되면 민심은 이반될 수 밖에 없다.
충남의 경우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 문제의 역사성을 들여다 보면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일삼다 결국 양을 잃게 되는 이솝 우화 ‘양치기 소년’을 연상케 한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균형발전이 국가적 아젠다로 자리잡으면서 수도권의 1차 공공기관 이전은 충남과 대전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혁신도시 지정 지역에 굵직굵직한 150여 개의 공공기관이 이전됐다.
충남은 대전과 함께 관할 내에 세종특별자치시가 건설된다는 이유로 혁신도시 대상에서 제외됐다. 전국에서 도 단위 자치단체 중 혁신도시 지정을 받지 못한 곳은 충남이 유일했다.
충남은 연기군과 공주의 일부 지역을 세종시로 내주면서 인구 감소나 재정, 대학 인재 지역채용 할당제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피해를 감내했다. 형의 입장에서 ‘아우 잘 되라고’ 도와 줬지만 오히려 혁신도시에서 제외되는 역차별을 당하는 꼴이 됐다.
충청권의 상대적 박탈감 속에 지난 2020년 3월 6일은 충청권에 의미있는 날로 평가됐다. 각고의 노력 끝에 충남과 대전을 수도권의 공공기관 이전을 담보로 하는 혁신도시로 지정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인 국가균형발전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것이다.
이 개정안은 수도권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혁신도시가 없는 대전·충남이 혁신도시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혁신도시 지정 대상과 절차 등을 담았다.
360만 충남·대전 도민들의 간절한 염원과 충청권 여·야 국회의원들이 한목소리로 힘을 모은 성과이자 충청권 역사상 180만 명이 넘는 서명을 받아 제출하는 등 충청권이 결집됐다는 점에서 감회가 남달랐다.
들불같은 민심을 바탕으로 공공기관 이전의 법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언감생심(焉敢生心) 5년 여가 지난 작금의 상황은 어떤가.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 까지 혁신도시는 ‘빈 껍데기’로 전락한 채 ‘희망고문’만 답습했다.
문재인 정부는 당시 총선이 끝나면 공공기관 지방 이전 시즌2를 시작하겠다고 공언(公言)했지만 ‘정치적 주판알’을 튕기며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허언(虛言)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균형발전 외면에 대한 역풍과 함께 민심이 악화되면서 충청권에서 심판론이 작동됐음은 선거 결과가 방증한다.
2022년에 출범한 윤석열 정부 역시 공공기관 이전 문제는 ‘도긴개긴’이었다. 당초에 공공기관 이전 로드맵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격으로 계속 미뤄지면서 공수표(空手票)만 날렸다.
결과적으로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에 대한 공약화 ▲추진 강조 ▲총선 이후 발표 연기 등의 수순은 지난 정부의 데자뷰나 다름 아니었다.
이재명 정부 들어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공약이 국정과제로 채택됐다고 하니 일단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공기관 2차 이전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말해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 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전 정부에서 ‘귀에 피가 나도록’ 많이 들은 얘기여서 노파심도 없지 않지만 전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와 이재명 정부까지 10여 년을 끌어 온 국정과제인 만큼 로드맵이 조속히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번 정부에서는 공공기관 이전 문제가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