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시론] 경주, APEC 정상회의 계기로 K-컬처가 확산되길 기대
일본 교토와 나라를 여행해 보면 인상적 것이 외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다는 것을 모두 느낀다. 외국 관광객이 전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두 도시의 국립박물관 등 여러 곳에서는 한국어, 중국어, 영어 등이 시끄러울 정도로 들린다. 교토와 나라와 비슷한 데가 많은 한국의 도시가 경주다. 교토와는 자국의 ‘1000년 수도’라는 같은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와 비교하면 전체적인 인상이 비슷하다. 고대의 왕궁터, 고분 등이 일상적 공간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외국인 관광객 수를 놓고 보면 비할 바가 못 된다. 두 나라를 대표하는 오래된 도시라는 공통점을 가진 경주와 교토와 나라는 어째서 이런 차이를 보이는 걸까?
문화적 힘이 다른 데서 비롯된 격차라는 게 나름의 결론이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를 되돌아보면 인상적인 장면이 많았다. 신라 금관에 매료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경주 에이펙의 가장 도드라진 에피소드였다.
국빈 선물로 우리 정부가 준비한 금관 모형에 홀딱 빠졌음을 그의 몸짓과 표정을 근거로 분석한 외신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떠날 때는 황금빛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듯, 금관을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실으라고 지시했다.
더 일찍 가져가기 위해 이 같은 지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 금관을 백악관 집무실 어디에 전시할지도 이미 정해놨다고 한다. 자신의 욕망에 지극히 단순하고 솔직한 그의 행동이 어린아이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유물이지만 외국인들은 존재를 알았을까 싶은 신라 금관은 세계 최고 권력자의 눈을 사로잡음으로써 이제 상당한 유명세를 누릴 것 같다.
또 경주가 일본 교토와 나라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아시아의 고도(古都)가 될 날을 기대해 본다. 한국 고대문화의 중심지인 경주의 비상은 곧 한국 문화 전체의 위상 강화됐다는 점에서 경주 에이펙의 성과라 해도 좋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직후 무궁화 대훈장을 수훈한 뒤 신라 금관 모형을 선물로 받았다.
외교적 기념품이지만, 묘한 상징성을 품고 있다. ‘왕이 되고 싶어 하는’ 대통령에게 ‘왕관’을 건넸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1973년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의 복제품이다. 국보 188호 천마총 금관은 신라 22대 지증왕의 금관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관을 선물받으면서 “정말 아름답다, 특별하다"라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신라 금관을 쓴 트럼프 대통령의 밈 영상도 온라인에서 확산 중이다. 영상에는 금관을 쓴 트럼프 대통령이 하얀 왕관을 쓴 멜라니아 여사와 춤을 추고, 주변 인물들은 이를 보며 박수를 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에게 신라 금관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천마총 금관의 화려한 장식에는 하늘과 인간, 신성의 질서가 담겨 있다.
권력은 하늘(신)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며, 절제와 책임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전한다. 다시 말해, 왕관은 통치의 영광이 아니라 통치의 무게를 상징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제대로 이해할지는 의문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신라 금관을 단순히 권력의 상징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오독이다.
왕관은 장식인 동시에 짐이며, 머리에 얹으면 더 무거워진다.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통치자다. 왕이 되고 싶어 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금으로 만든 왕관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제어할 줄 아는 지혜의 철학일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금을 귀중하게 여겨왔다.
금은 6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고대 이집트는 파라오의 관을 순금으로 제작하고 미라 얼굴에 황금을 씌울 정도로 금을 신성시했다. 역사에선 삼국시대 신라가 금이 풍부한 나라로 여러 문헌에 기록됐다. 10세기 아랍의 지리학자 알 마크디시는 창세와 역사서에서 신라인은 집을 금실로 수놓은 천으로 장식하고, 금 밥그릇을 사용한다고 기술하기도 했다.
‘삼국유사’에는 ‘금은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건물인 금입택(금으로 입힌 집)이 35곳 있다’고 했다. 신라의 정교한 금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은 금관이다. 전 세계적으로 발굴된 고대 순금 금관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7개가 있는데 가야 금관 1개 외엔 모두 신라 금관이다.
6개 모두 고귀한 유물이나 천마총 금관은 가장 크고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금관은 신라 22대 왕인 지증왕이 썼던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가 32.5㎝ 머리 띠 둘레가 63㎝에 이르는 대관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이 다음 달 14일까지 신라 금관, 특별전이 ‘오픈런’ 행렬로 이어지고 있다.
천마총을 비롯해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황남대총 교동 출토 금관까지 총 6점이 사상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으니 그럴 만하다. 최근 황리단길과 전통 시장 등 경주 곳곳에는 외국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우리나라 경주도 일본 교토와 나라 두 도시처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K-컬처가 더 확산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