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 나노바디 기반 ‘초정밀 바이오센서’로 암 조기진단 기대

생명연-표준연-기초지원연 등 융합기술 기존 ELISA 대비 감도 1000배 향상 초정밀 바이오마커 진단 플랫폼

2025-11-12     김현수 기자
연구책임자 우의전 박사(오른쪽)를 비롯한 연구진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생명연)

[충남일보 김현수 기자] 국내 연구진이 나노바디 기반 초정밀 바이오센서를 개발하며 암 진단을 더욱 앞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하, 생명연) 바이오디자인교정연구센터 우의전 박사 연구팀은 암과 염증 반응의 주요 진단 지표 중 하나인 인터루킨-6(Interneukin-6, 이하 IL-6) 단백질을 초정밀하게 감지할 수 있는 나노바디 기반의 바이오센서를 개발했다.

IL-6는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단백질로, 우리 몸이 염증이나 암세포에 반응할 때 그 수치가 급격히 높아지는 특징이 있어 췌장암, 신장암, 자가면역질환, 패혈증 등 다양한 질환의 조기진단과 예후 모니터링의 핵심 지표(biomarker)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진단기술(ELISA, PCR 등)은 분석 시간이 길고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며, 극미량의 단백질을 탐지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항체보다 10분의 1 크기인 나노바디에 주목했다. 나노바디는 낙타과 동물의 항체에서 유래한 초소형 단백질로 일반 항체보다 훨씬 작고 구조적으로 단단하며, 세균에서도 쉽게 생산할 수 있어 진단기기 개발에 매우 유리하다.

특히 작은 크기 덕분에 센서 표면에 더 촘촘히 부착할 수 있고, 온도와 환경 변화에도 안정적이어서 현장 진단(POCT) 기기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에 연구팀은 기존 항체의 ‘핵심 부분(인식 부위)’만을 정밀하게 복제해 나노바디로 직접 바꿀 수 있는 ‘CDR 그래프팅(CDR grafting)’ 기술을 고안했으며 이를 통해 면역 동물실험 없이도 고정밀 나노바디를 신속하게 제작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설계한 나노바디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하, 표준연)이 보유한 액체 속 반응을 직접 감지할 수 있는 실리콘 센서(Solution-Immersed Silicon; SIS) 기술과 결합해 세계 최고 수준의 민감도를 갖춘 바이오센서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SIS 센서는 액체 환경에서 실리콘 표면의 빛 반사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해 단백질 결합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첨단 광학 기술로금속막이 필요하지 않아 신호 간섭이 적고 안정성이 높다.

이번에 개발된 센서는 극미량의 단백질도 탐지할만큼 매우 민감했다. IL-6 단백질이 1조분의 1그램(4.5 fg/mL) 수준으로 존재해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정밀했으며, 이는 현재 사용되는 ELISA 진단키트 대비 약 1000배 높은 감도에 해당한다.

더 나아가, 췌장암과 신장암 환자의 혈청을 분석한 결과, 건강한 사람과 환자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었으며, 임상 진단에 직접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도 확인됐다.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성과는 단순히 새로운 센서를 만든 데 그치지 않고, 항체를 나노바디로 직접 바꿀 수 있는 설계 플랫폼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 플랫폼을 활용하면 특정 질병 단백질을 인식하는 항체가 이미 확보돼 있는 경우, 해당 항체를 단기간에 나노바디로 바꾸어 다양한 센서나 진단기기에 적용할 수 있다.

해당 기술이 상용화되면 암 조기진단은 물론, 병원·가정·응급 현장에서도 신속한 질병 판별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책임자인 우의전 박사는 “이번 연구는 항체공학과 정밀계측기술을 결합해 생체신호를 극미량에서도 감지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라며 “이 기술을 통해 암이나 염증성 질환 등 다양한 질병의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생체변화를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