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학가의 AI 부정행위
커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커다란 사회문제였다. 발전과 함께 커닝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 1993년 수학능력시험에서 이동통신 기기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처음 등장하기도 했다. 답안을 유출하는 ‘선수’와 이를 중계하는 ‘도우미’, 답을 제공받는 ‘수험생’으로 나눠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선수가 시험 도중 답안지를 들고 시험장을 빠져나오면 도우미는 이 답안을 전달받아 수험생에게 삐삐로 전송했다. 2004년에는 휴대전화 문자 송신 시스템을 이용한 부정행위가 처음으로 적발됐다. 수험생, 입시학원 원장, 학부모 등이 대대적으로 연루돼 성적 무효 처리된 수험생만 314명에 달했다.
과거제도가 시작된 중국의 커닝 수법은 다양했다. 깨알 만한 글씨 70만 자가 적힌 도포와 가로 4.5㎝, 세로 3.8㎝, 두께 0.5㎝에 불과한 책 9권에 10만 자를 써넣은 청나라 때 커닝 페이퍼가 남아 있다. 조선 과거시험에서도 부정행위가 빈발했다. 다른 사람의 답을 베껴 쓰거나 커닝페이퍼를 감추고 들어가는 사례가 흔했다.
숙종실록에는 성균관에서 시험장까지 대나무통이 묻혀 있는 게 적발됐다는 기록도 있다. 최근 연세대와 고려대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인 챗GPT를 활용한 학생들의 부정행위가 적발된 데 이어 서울대를 비롯한 다른 대학에서도 비슷한 부정행위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규모 비대면 시험에서 부정행위가 이뤄진 연세대나 고려대와 달리 서울대는 소규모 대면 시험 상황이었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AI 커닝’이 확산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치러진 교양과목 ‘통계학실험’ 중간고사에서 일부 학생이 챗GPT의 도움을 받아 답안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목은 수강생이 30명 남짓 되는 대면 강의로 지난해 12월에도 유사한 의혹이 제기됐으나 증거가 부족해 징계 없이 마무리됐다. 올 6월엔 서울여대 전공과목의 대면 시험에서 일부 학생이 AI로 서술형 문항을 작성한 사실이 적발돼 0점 처리됐다. 모든 수업과 시험이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사이버대학들의 경우 “정직하면 오히려 손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AI 부정행위가 퍼져 있다.
3년 전 챗GPT 출시 직후부터 반복되는 문제임에도 국내 대학들은 여전히 무방비 상태다. 대학가의 AI 부정행위를 놓고 학생들의 윤리 의식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AI가 가져온 혁명적인 변화만큼 교육 현장도 바뀌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초중고교도 17개 시도 교육청 가운데 7곳은 AI 가이드라인조차 없다.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곳도 ‘윤리적 사용 교육은 필수’와 같이 원론적인 원칙만 제시하고 있어 유명무실하다. AI 활용이 일상인 ‘챗GPT 세대’에 맞게 교육과 평가 방식을 바꾸고, 초중고교의 경우 교육부 차원의 구체적인 활용 지침을 내놔야 한다. 교육계에 AI 활용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인공지능 활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적극 제시하고 대학은 시대에 맞게 강의와 평가 방식의 개선 방안을 내놓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