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전쟁의 비극을 기억하는 음악

애도하는 음악/제레미 아이클러 지음·장호연 옮김/뮤진트리 /492쪽

2025-11-17     충남일보
 [글·사진=연합뉴스]

20세기 러시아 음악을 대표하는 쇼스타코비치(1906∼1975)가 1962년 작곡한 '바비 야르'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애도하는 작품이다. 바비 야르는 1941년 학살이 자행됐던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협곡의 지명이다.

'불협화음'과 '12음 기법'의 창시자인 오스트리아의 쇤베르크(1874∼1951)는 2차대전이 끝난 뒤 독일의 폴란드 침공 당시 바르샤바 시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위로하는 음악 '바르샤바의 생존'을 내놓았다. 당시 바르샤바의 수용소 상황을 내레이션으로 집어넣은 성악곡(칸타타) 형식의 작품이다.

독일 후기 낭만파 음악의 대가인 슈트라우스(1864∼1949)가 말년인 1945년 작곡한 '메타 모르포겐'은 2차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에 대한 참회와 애도를 담은 음악이다. 나치 전체주위에 휩쓸려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만 독일 국민을 위한 일종의 장송곡이었다.

'적과 아군이 함께 부르는 화해의 합창곡'으로 유명한 '전쟁 레퀴엠'은 영국의 평화주의 작곡가 브리튼(1913∼1976)이 1962년에 작곡한 음악이다. 1940년 독일의 폭격으로 파괴된 성 미카엘 대성당이 1958년 재건됐을 때 그 헌당식에 쓸 음악으로 작곡됐다.

미국의 유력 음악평론가인 제러미 아이클러가 최근 출간한 '애도하는 음악'(뮤진트리)은 20세기 유럽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쇼스타코비치, 쇤베르크, 슈트라우스, 브리튼의 음악을 통해 '음악이 인간의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고 위로할 수 있냐'는 질문에 답을 내놓은 책이다.

저자는 쇼스타코비치는 '침묵'으로, 쇤베르크는 '불협화음'으로, 슈트라우스는 '고전의 잔향'으로, 브리튼은 '화해의 합창'으로 인류의 비극을 기억하고 극복해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음악은 기억의 마지막 형식이며,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이라고 해석한다.

네 작곡가의 음악은 하나같이 음악사에 길이 남는 역작이지만, 진지하게 죽음을 다뤄 다가서기 쉽지 않은 곡들이다. 저자는 이 음악들이 전쟁과 광기 속에서 어떻게 인간의 기억을 대신해 애도하고, 역사와 감정을 엮어냈는지를 독자와 함께 찬찬히 풀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