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단] 혼밥과 SNS 사이, 우리는 어떻게 다시 이어질까
얼마 전 공직에서 중견간부직으로 있는 후배를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직원들과 얼마나 자주 식사를 하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주로 혼밥을 한다는 의외의 답변을 들었다. 코로나를 계기로 확산되었던 혼밥문화가 바뀌지 않고 고착되었다는 것이다. 본인도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빨리 밥 먹고 들어와 밀렸던 일을 하는게 오히려 편하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니 과거에는 ‘밥정’이라고 밥 먹는 만큼 정이 든다고 했는데, 혼밥하며 어떻게 동료와 관계를 쌓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최근 비영리연구재단인 사회적 가치연구원과 리서치회사 트리플라엇이 발간한 연례보고서 ‘2025 한국인이 바라본 사회문제’에 따르면 개인의 행복도가 10점 만점에 6.34점으로 지난해(6.54점)보다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한명도 없다고 답한 비율이 9.8%로 전년도 4.1%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인 10명 중 1명은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없는 셈이다. 이 수치는 삶의 주요 영역에서 서로를 지탱해주는 관계망이 약해졌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이 개인의 외로움을 넘어 사회적 위험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더 자주 연결되지만, 실제 관계의 질은 오히려 약화됐다. SNS에서 ‘좋아요’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유지한다고 느끼지만, 정작 어려운 순간 함께할 사람은 사라지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은 SNS 비교와 따돌림 속에서, 중년은 일터 경쟁 속에서, 노년은 단절된 생활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고립’을 경험한다. 디지털 사회의 편리함이 오히려 정서적 단절을 심화시킨 셈이다.
한국 사회의 고립은 세대별로 양상이 다르다. 청소년은 학업 스트레스와 관계 피로감 속에 또래와의 유대가 느슨해지고, 직장인들은 점심시간마저 혼자 해결하며 효율을 중시하는 문화에 익숙해졌다. 노년층은 배우자나 친구의 상실 이후 관계망이 빠르게 붕괴된다.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가 되어 버렸다. 문제는 이 고립이 ‘위험의 사각지대’를 낳는다는 점이다. OECD는 사회적 관계가 약한 사람일수록 우울증, 자살, 건강 악화, 경제적 불안정에 더 쉽게 노출된다고 지적한다. 관계망의 부재는 복지정책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결핍”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행정적 지원망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법은 공동체가 느슨하게나마 복원되고 스스로 연결되는 지역 기반의 회복력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일본의 ‘고독사 예방 프로젝트’는 지방정부가 주도하되, 이웃 자원봉사단과 NPO가 중심이 되어 ‘찾아가는 대화 모임’을 운영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민간과 시민이 협력해 고립을 막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이웃살피미’는 주민 자원봉사자가 홀로 사는 노인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지역 사회복지관과 연계해 정서적·생활적 도움을 제공한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행정적 지원과 더불어 민간의 자발적 네트워크가 협력한 지역사회모델들이다. 우리는 어려운 일에 직면했을 때 그 어려움을 돌파하는데 내 가족만이 아니라 내 이웃이 힘이 되어주고, 지역사회가 함께 나서서 그 문제를 해결 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관계망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히 디지털과 개인주의가 강화되는 시대일수록, 현실 공간에서 서로를 확인하고 기여할 수 있는 구조를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접촉과 참여 경험이 쌓여야 사람들은 서로를 믿고 기대는 법을 배운다. 나는 올해 1월에 전문직여성(BPW) 세종클럽을 만들어 정기 모임과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 회원과 지역 주민을 연결하며, 세대와 직업을 넘어 신뢰와 지원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관계망’들이 살아날 때 우리는 서로의 등을 내어주고 기대며 함께 지지할 수 있는 외롭지 않은 사회를 다시 만들 수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