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는 꺾였지만 덩치는 더 커졌다’... 3분기 가계빚 사상 최대

가계신용 1968조3000억 원, 여섯 분기 연속 증가 6·27 대책 이후 주담대·기타대출 증가 둔화... 판매신용 3조 원 늘어

2025-11-18     이승우 기자
3분기 가계빚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으나 6·27 대책 이후 주담대·기타대출 증가 둔화 영향으로 증가 속도가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사진제공=연합뉴스)

[충남일보 이승우 기자] 올해 3분기 가계 빚이 다시 역대 최대를 경신했으나 증가 속도는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 이후 눈에 띄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18일 발표한 ‘2025년 3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68조3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2분기 말 1953조3000억 원에서 3개월 사이 14조9000억 원 불어나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2년 4분기 이후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증가액 자체는 적지 않지만 2분기 25조1000억 원과 비교하면 약 40p, 금액 기준으로는 10조 원가량 줄어든 셈이다. 증가율도 2분기 1.3p에서 3분기 0.8p로 낮아졌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보험사·대부업체·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각종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 금액(판매신용)을 더한 포괄적 가계 부채 개념이다.

우리나라 가계신용은 작년 1분기에 3조1000억 원 줄며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이후 반등해 이번 3분기까지 여섯 분기 연속으로 증가 흐름을 이어갔다.

가계신용에서 판매신용을 제외한 가계대출 잔액은 3분기 말 1845조 원으로 집계됐다. 전 분기 말 1833조1000억 원보다 12조 원 늘었지만 2분기 증가액 23조6000억 원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가계신용 전체 증가 폭이 줄어든 배경에는 이처럼 대출 중심의 증가세가 눈에 띄게 완화된 영향이 크다.

상품별로 보면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이 3분기에도 증가세를 주도했다.

3분기 말 기준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159조6000억 원으로 세 달 사이 11조6000억 원 늘었다. 직전 분기 주택담보대출이 14조4000억 원 늘었던 점을 감안하면 증가 폭은 세 분기 연속 줄어든 셈이다.

신용대출과 증권사 신용공여 등을 포함한 기타 대출도 잔액이 685조4000억 원으로 3000억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2분기 기타 대출이 9조2000억 원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증가세가 거의 멈춘 수준이다.

창구별 흐름을 살펴보면 예금은행과 비은행권 모두에서 속도 조절이 확인된다.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3분기 말 1003조8000억 원으로, 분기 중 10조 1000억 원 늘었다. 2분기 증가액 19조3000억 원의 절반 남짓이다.

이 가운데 예금은행 주택담보대출은 10조9000억 원 증가한 반면 기타대출은 8000억 원 감소해 상반기와는 다른 흐름을 보였다.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은 316조2000억 원으로 2조 원 늘었다. 작년 4분기 이후 네 분기 연속 증가세지만 2분기 3조 원에서 증가 폭이 줄어든 모습이다.

보험·증권·자산유동화회사 등 기타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525조 원으로 1000억 원 감소해 전 분기 1조 3000억 원 증가에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 같은 흐름에는 지난 6월 27일 발표된 이른바 ‘6·27 가계부채 관리방안’과 7월부터 시행된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강화 조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6·27 대책은 수도권 규제지역 내 주택 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 상한을 6억 원으로 제한하고 신용대출 한도를 차주별 연 소득 이내로 묶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민수 한국은행 금융통계팀장은 “6·27 대책 이후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이 줄고 신용대출이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전체 가계대출 증가 폭도 2분기보다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주택시장 지표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국토교통부 집계에 따르면 3분기 전국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13만5000가구로 2분기 15만9000가구에서 줄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거래량이 함께 감소한 가운데 9월 들어 거래가 다소 반등했으나 정부가 10월 15일 추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만큼 레버리지를 활용한 주택 매입 수요는 점차 제약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 한도가 순차적으로 축소되면서 동일한 거래량이라도 가계가 동원할 수 있는 부채 규모는 줄어드는 구조다.

다만 대출 증가세가 주춤한 것과 달리 판매신용은 오히려 속도가 붙었다. 3분기 말 판매신용 잔액은 123조3000억 원으로 전 분기 말보다 3조 원 늘었다. 2분기 증가액 1조5000억 원의 두 배 수준이다.

휴가철을 전후한 카드 사용 확대와 재산세 등 지방세 납부 수요가 겹치면서 신용카드 이용 규모가 커진 결과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개인 신용카드 이용액이 2분기 196조9000억 원에서 3분기 203조2000억 원으로 늘어난 점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총량 측면에서는 여전히 사상 최대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수준이지만 한국은행은 가계부채의 속도 조절이라는 관점에서 3분기 흐름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가계신용 증가율이 0.8p까지 떨어진 데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분기 전년 동기 대비 0.6p에서 3분기 1.7p로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명목 GDP 수치가 아직 발표되지는 않았으나 경제 규모가 커지는 속도가 부채보다 빨라질 경우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낮아질 수 있다.

실제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지난해 4분기 89.6p에서 올해 1분기 89.4p로 떨어졌다가 2분기 89.7p로 소폭 반등한 상태다.

한국은행과 정부는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중장기적으로 80p 안팎까지 점진적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단기간에 부채를 급격히 줄여 경기 충격을 키우기보다는 대출 증가 속도를 완만하게 조정해 경제 성장과의 간극을 서서히 줄이겠다는 접근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