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수능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에게
지난 13일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날이었다. 그동안 수능시험을 준비하며 고생한 수험생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제는 자신이 받을 점수를 생각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진학할 수 있는 대학 선택을 고심할 것이다. 자신의 진로를 생각하면서 전공해야 할 학과와 진학해야 할 학교를 선택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유병희 선배가 생각난다. 그 선배는 경상남도 거창에 있는 거창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 학교에는 SKY대학에 입학생을 무더기로 보내는 것도 아닌데, 전국적으로 많은 수재가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우수한 학생들이 선택하는 이유는 학교의 교육 방침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쉬운 길을 가기를 원하고 비단길을 걸으면서 앞장서기를 바라지만, 거창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전혀 반대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서 시골 고등학교의 신화처럼 전해오는 직업 10계(戒)를 내게 들려주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 10계>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유 선배는 대한민국의 동쪽 끝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이 대학에서는 자기를 희생하는 교수, 기도로 후원하는 학부모, 등록금을 없애려고 장학금을 맡기는 동문의 열정으로 많은 수험생이 지원하는 학교가 되었단다.
한동대학교에서는 개교 이래 모든 시험을 무감독으로 치르고, 전체 수업의 30% 이상을 영어로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정직한 교수들은 학생들을 열심히 지도하여 진리 탐구에 매진하게 만들고 있단다. 교수들이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온정적으로 학점을 뻥튀기하여 A 학점을 남발하는 일이 없는데도 취업률이 높다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한동대 졸업생을 서로 데려가려고 한단다. 또한 로스쿨을 마친 학생들은 미국 변호사 시험에 60%가 넘는 합격률을 보인단다.
그러다 보니 해가 갈수록 한동대학교 지원율이 점점 높아지고, 학부모들은 포항이란 작은 도시로 학생들을 보내고는 지역마다 학부모 모임을 만들어서 학생들과 학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단다. 이러한 부모 밑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기에 신입생 환영회부터 술독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다가 학교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중도 탈락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재학생들이 편입시험이나 재수학원으로 달려가는 일은 찾아보기 어려운 학교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졸업한 동문은 취업하면 등록금 걱정하는 재학생들을 위해 봉급에서 조금씩 떼어 후배들을 위해 후원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식은 커피잔을 집어 들면서 유 선배는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또 하나의 대학으로 남을 바에는 차라리 학교 문을 닫든지, 아니면 올바르게 학생들을 가르쳐서 진리 탐구의 정신을 실천하는 대학으로 탈바꿈하든지 선택해야만 한다고 일갈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때 나의 머릿속도 말끔하게 정돈되었던 일이 해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때가 되면 떠오르는 것은 아마 내가 교육계에 몸을 담고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