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노반도체의 미래, 대전에서 다시 묻다
정유선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
지난 11월 14일 장철민 국회의원과 함께 ‘나노반도체,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토론회는 우리 반도체 산업의 방향을 재정비해야 할 시점임을 다시 확인시켜 준 자리였다. 미국·일본·유럽이 반도체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가운데, 한국 역시 새로운 성장축을 어디서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번 토론회의 핵심 질문은 명확했다. “대전은 어떤 반도체 도시가 되어야 하는가.”
일각에서는 대전이 제조 중심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산업단지 조성의 경제성이 낮다는 평가를 내려왔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의 변화 양상을 고려하면 이러한 평가는 대전의 성격과 산업의 본질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반도체 산업은 더 이상 ‘어디에서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어디에서 기술을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해지는 구조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은 기초과학·소재 연구·나노공정 개발·정보통신 기술을 포괄하는 국가 연구기관들이 집적된 도시다. KAIST, ETRI, IBS, 충남대, 한밭대를 중심으로 구축된 연구 생태계는 국내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자산이다. 이러한 연구 기반은 단순 제조형 산업단지를 넘어 고난도 공정 실증, 설계 기술 개발, 장비·소재 검증 등 ‘첨단 기술 실험도시’로서의 잠재력을 뒷받침한다.
대전이 필요한 것은 대규모 팹 유치가 아니다. 오히려 공정 개발과 실증, 연구 장비 테스트, 설계기업 성장에 적합한 R&D 중심 나노반도체 생태계가 더 현실적이며 경쟁력이 높다. 세계 주요 혁신도시들이 선택한 모델 역시 이러한 방향이다. 기술을 실험하고 검증하는 도시가 제조 중심지와 연동될 때 산업 전체의 효율과 속도는 더욱 올라간다.
대전이 이 역할을 수행한다면 충청권 전체의 반도체 벨트는 균형 잡힌 구조를 갖추게 된다. 수도권의 제조 중심지, 청주·천안·세종의 생산 기반, 그리고 대전의 연구·실증 기능이 서로 연결될 때, 우리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국가 반도체 생태계를 완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과제가 분명하다.
첫째, 정부는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R&D 중심 산업단지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제조형 산업단지와 동일한 잣대로 평가해서는 혁신도시의 가치를 반영할 수 없다.
둘째, 대전시는 공공 연구기관과 기업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공동 테스트베드·공용 인프라 중심의 산업단지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 설계 기업, 장비·소재 스타트업, 공정 개발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인증·실증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대전에 오면 어떨까요?”라는 질문은 단순한 지역 선택이 아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어떤 구조로 재편될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어디에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대전은 그 답을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그 가능성을 전략으로 연결하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