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자이면서도 교만하지 않다면 어떻습니까?” 자공이 물었다. 공자가 답했다. “좋겠지. 허나 가난해도 즐겁게 살고, 부자이지만 예의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구나.”
단지 몇 자의 글자만을 바꾸었을 뿐인데, 자공과 공자의 내공 깊이가 현격히 드러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 까마귀를 그저 ‘까만 새’로 보는 것은 누군가 이미 ‘까마귀=검다’라고 규정해 놓은 렌즈를 통해 보는 일이다. 일상의 많은 부분이 이런 언어의 필터로 인해 편리해지고, 단순해진다.

조선 후기 문인이자 기하학자 유금(1741~1788)의 시를 모은 ‘낭환집(蜋丸集)’이 있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쇠똥구리가 굴리는 똥 덩어리, 즉 소똥이나 말똥 구슬이라는 뜻. 이런 독특한 제목을 붙이게 된 사연이 재미있다. 유금은 실학자 유득공의 작은아버지. 연암 박지원과도 친분이 깊은 북학파 학자다.

유금은 과학보다 문사철(文史哲)을 중시했던 시대에 수학과 기하학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따온 ‘기하실’이란 이름의 서재에서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수학과 역산학을 연구했다. 휴대용 천문 관측기구인 별시계 ‘아스트롤라베’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시를 읽어보면, 문학적으로도 그의 재능과 인품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잘 알 수 있다.

한번 웃노라

그렇고 그런 30년 인생/ 부귀와는 담을 쌓았네
밤비에 수심이 쌓이고/ 추풍에 감개가 많아라.
사람들 모두 이리 악착스러우니/ 세상 보고 한번 웃노라
농사지을 땅이나 조금 있으면/ 밭 갈며 자유롭게 살아갈 텐데
<유금 ‘낭환집’>

▲ 겸재 정선 하마가자도(蝦蟆茄子) 간송미술관. ‘하마’는 두꺼비, ‘가자’는 가지. 하늘색 도라지꽃이 보라색 가지꽃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지는 보라색 꽃과 함께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다. 가지는 남근(男根)을 닮아 다자(多子) 또는 득남의 상징. 겸재가 70대 후반인 노년기에 그렸다. 맨 아래 쇠똥구리가 보인다.

#1. 비단옷을 입은 장님

1771년 어느 날 유금은 자신의 시집 초고를 연암 박지원에게 보여주면서 평을 부탁했다. 유금은 연암의 이야기를 듣고 시집 이름을 ‘낭환집’이라 정하며 서문까지 써 달라고 했다. 서문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연이어 옴니버스 형태로 등장한다.

첫 이야기는 ‘자무’와 ‘자혜’란 두 아이가 밖에서 놀다가 비단옷을 입은 장님을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자혜가 장님을 보고 “아, 자기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기 눈으로 보지를 못하는구나”라고 말했다.

자무는 “비단옷 입고 밤길을 걷는 자와 비교하면 어느 편이 낫겠는가?”하며 실랑이를 벌였다. 이를 두고 계속해서 다툼을 벌이다 마침내 청허선생(聽虛先生)에게 물어봤다. “나도 모르겠네”라는 답변만 들었다. 아니 이렇게 허무한 이야기가 있나 싶지만, 여기에는 연암의 깊은 뜻이 있다. 도대체 연암이 한 자락 깔고 시작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연암은 먼저 장님의 비단옷과 밤길의 비단옷을 들고 나왔다. 비단옷을 입기는 입었는데, 하나는 장님이 입었고 다른 하나는 밤길의 나그네가 입었다. 장님의 비단 옷은 그 때깔이 얼마나 좋은지 정작 당사자는 알 길이 없어 문제다.

밤길의 비단옷은 남들이 그 좋은 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도 둘 사이에 우열을 가를 수는 없을까? 이렇게 시작된 논쟁은 청허선생에게 판단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청허선생이란 말 그대로 텅빈 ‘허(虛)’를 들을 수 있는 현자다. 이름 작명 또한 연암의 유머 센스가 숨어있다. 그런데 청허선생도 최종 판단은 연암에게 미룬다. 계속해서 조금만 더 들어보자.

#2. 황희 정승의 이

두 번째 이야기에는 황희 정승이 등장한다. 세종 때 황희 정승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자 그 딸이 맞이하며 묻기를, “아버님, 이는 어디서 생겨요? 옷에서 생기죠?” 하니, “아무렴” 하므로 딸이 “내가 이겼다”라고 말했다. 이번엔 며느리가 물었다. “아버님, 이는 살에서 생기는 게 아니에요?” “그렇고말고” 황희가 맞장구 했다. 며느리가 웃었다. 이를 보던 부인이 힐난했다. “둘 다 옳다 하시니, 누가 대감더러 슬기롭다 하겠소.”

황희 정승이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했다. “무릇 이는 살갗이 없으면 부화하지 못하고, 옷이 없다면 붙어 있지 못한다. 그래서 둘 다 옳은 것이지. 그렇지만 장롱 속에 두어도 이가 있고, 옷을 안 입었을 때도 가려울 때가 있지 않느냐. 옷과 살의 중간에서 이가 생기느니라.” 연암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이제 슬슬 감이 온다. 마지막 이야기를 읽어본다.

▲ 이교익(1807년~?). 하마가자도. 순천대학교 소장. 가지 꽃이 활짝 핀 여름날 두꺼비와 쇠똥구리를 그렸다. 쇠똥구리의 위치가 조금 옮겨졌을 뿐 겸재 정선의 ‘하마가자도’를 모방했다. 본래 쇠똥구리는 쇠똥을 뒷다리로 굴리는데 그림에서는 뒷다리가 아닌 앞다리로 나르고 있다.

#3. 짝짝이 신발, 그게 뭐가 대수야?

선조 연간 백호 임제(1549년∼1587년)가 잔칫집에서 거나해져 말을 타려 하자 종이 나서며 말한다. “나리께서 취하셨군요. 한쪽에는 가죽신을 신고, 다른 한쪽에는 나막신을 신으셨으니.” 그러자 임제가 냅다 꾸짖었다.

“길 오른쪽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고, 길 왼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나막신을 신었다 할 것이니, 내가 뭘 걱정하겠느냐.” 임제는 벼슬을 벗고 낭만과 풍류를 즐기며 주유천하 했다. 그가 기생 황진이 묘를 찾아가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라고 읊은 시는 유명하다.

이로써 세 가지 이야기는 끝이 났다. 이 같은 비유는 연암의 ‘까마귀론’에서도 나온다. 까마귀를 실제로 자세히 살피지 않는다면 까마귀의 초록빛도, 자줏빛도, 심지어 검정빛도 제대로 볼 수 없다. 우리가 보는 모든 사람은 멀쩡한 사람(언제나 신발을 짝 맞추어 신는 사람)이어야 하고, 우리가 보는 모든 까마귀는 언제나 검은색이어야 하기 때문.

연암의 메시지는 뚜렷하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 자신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재단하지 말라는 데 방점을 뒀다. 서로 다른 철학을 가진 이들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길 바랐던 것이다. 말위에 앉은 사람의 신발이 짝짝이인지, 아닌지는 길 한편에 있는 사람은 알 수 없다. 정말 그 사람에게 다가가 왼쪽도 살피고, 오른쪽도 자세히 살피지 않는다면 말이다. 천하에 발만 큼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없는데도 보는 방향이 다르면, 그 사람이 가죽신을 신었는지 나막신을 신었는지 분간하기가 어렵다는 것.

연암이 말하고 싶은 진실의 방은 ‘사이’ 곧 피안과 차안의 경계에 있다. “가령 이가 생기는 것도 지극히 미묘하다. 옷과 살 사이에 본디 떨어져 있지도, 붙어 있지도 않다. 오른쪽도 아니고 왼쪽도 아니라 할 것이니, 누가 그 ‘중간(中)’을 알 수가 있겠는가?”

이는 옷과 살의 미묘한 사이에서 생기므로 이분법으로 보면 일면적 진실일 뿐 실체적 진실은 아니라는 점이다. 연암은 다시 강조한다. “참되고 올바른 식견은 진실로 옳다고 여기는 것과 그르다고 여기는 것의 ‘사이’에 있다.”

▲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화. 맨드라미는 닭 볏을 닮아 ‘계관화’라고 불리는데, 과거에 급제해 관을 쓰고 관리가 되는 기원을 담은 꽃. 푸른색 쑥부쟁이가 맨드라미를 더욱 돋보이는 조연으로 자리 잡고 있다. 흰나비 세 마리와 검은 쇠똥구리 세 마리가 완벽한 대비를 이룬다. 쇠똥구리는 껍질이 단단해 갑(甲) 옷을 입은 곤충이라 1등을 상징한다. 국립중앙박물관.

똥 덩어리와 여의주의 가치

용이 가진 여의주와 쇠똥구리가 굴리는 똥 덩어리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연암이 꺼낸 세 가지 일화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다. 마지막에서야 쇠똥구리와 흑룡을 비유하며 해답을 제시한다. 쇠똥구리는 자신의 소똥을 아껴 흑룡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으며, 흑룡 또한 자신에게 여의주가 있다고 쇠똥구리의 똥 구슬을 비웃지 않는다고 전제한다.

“이 시집을 읽고 한편에서 흑룡의 여의주라 여긴다면, 이는 그대의 짚신을 본 셈이요, 소똥 경단이라 여긴다면 이는 그대의 가죽신을 본 셈이리라.”

상식적으로 여의주는 누구나 탐내는 물건이고, 소똥은 하찮은 존재다. 그러나 서로 비웃지 않는다. 용에게는 여의주가, 쇠똥구리에게는 소똥이 필요할 뿐이다. 연암은 소똥 구슬의 비유를 들어 유금의 인생과 시에 대해 본질을 꿰뚫어 봤다.

연암은 유금이 지은 시가 크게 유행할 날을 스스로 보지 못한다면, ‘비단옷 입고 밤길 걷는 격’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남들의 이목과 시집의 평판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누가 알아줄 것인가? 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자존감과 긍지를 갖는 게 더 중요한 일이 아니던가.

유금은 단박에 연암이 의도한 바를 알아챘다. 즉석에서 자신의 시집 이름을 <낭환집>으로 정했다. 이심전심. 사실 유금은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 금(琴)처럼, 거문고 연주에 뛰어났다. 어려운 학문인 기하학에도 능통했고, 그가 만든 수차는 사람들을 경탄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서자 출신이라는 신분적인 제약으로 평생 벼슬을 하지 못했다. 유금은 ‘어찌할 거나’라는 시를 통해서도 답답함을 드러낸다. “나는 병신도 아닌 멀쩡한 사내건만/수공업과 장사 일 배우려 들면/ 선비들 모두 비루하게 여기네/ 세 치 혀가 있긴 하지만/ 남들 비위를 맞추지 못하네.”

‘귀울림’과 ‘코골이’ - 이명비한(耳鳴鼻鼾)

소리는 마음을 움직인다. 마음과 소리는 한 배를 타고 움직인다. ‘이명’은 귀 이(耳) 울 명(鳴). 흔히 ‘귀울림’으로 알려진 이명 역시 마음과 밀접한 병이다. ‘비한’은 코 비(鼻)와 코 골 한(鼾). 잠잘 때 코를 고는 것을 말한다. 연암의 가치 판단 기준은 ‘이명과 코골기’란 글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연암은 귀에서 환청이 들리는 이명과 코를 고는 비한증을 인간사에 교묘히 대입시켰다.

한 아이가 놀다가 갑자기 귀에서 ‘앵~’ 소리가 들렸다. 놀라 기뻐하며 가만히 옆의 동무에게 말했다. “얘, 이 소리 좀 들어봐! 내 귀에서 아주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걸. 꼭 피리를 부는 것 같기도 하고, 생황을 부는 것 같기도 한데 소리가 동글동글한 게 꼭 별 같아.”

옆의 아이가 맞대고 귀를 기울여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명이 난 아이는 답답해 소리를 지르며 남이 알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했다.

언젠가 어떤 촌사람과 한 방에 잤는데 그는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았다. 어떤 때는 토하는 것 같기도 하고,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탄식하거나 한숨 쉬는 소리 같기도 했다. 또 ‘푸우∼’ 하고 입으로 불을 피우는 것 같기도 하고, 보글보글 솥이 끓는 것 같기도 하고, 빈 수레가 덜커덩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숨을 들이쉴 땐 톱질하는 소리 같고, 숨을 내쉴 땐 돼지가 꿀꿀거리는 소리 같았다. 하도 시끄러워 옆 사람이 흔들어 깨우자 발끈 성을 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언제 코를 골았소?” <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稿自序)>

왜 연암은 난데없이 이명과 코 골기를 들고 나왔을까? 연암은 바로 직격탄을 날린다. 이명은 자기만 알고 남은 결코 알 수가 없다. 코 골기는 남들은 다 아는데 정작 자기만 모른다. 아무도 인정 안 하고 나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명’에 걸린 사람이고,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비한’에 걸린 사람이라는 것. 사실 이명은 자신만이 아는 병이요, 코골이는 남이 먼저 아는 증상이 아니던가. 다시 말하면, 이명의 환청은 자기만 느끼기에 내 주장만 고집한다는 것이요, 코를 골았으면서도 못 느끼는 비한증은 “나는 그런 적 없소이다!”라고 자신의 단점을 부정을 한다는 것이다.

이에 연암은 “얻고 잃음은 내게 달려있고, 기리고 헐뜯음은 남에게 달려있다”고 정리한다. 남의 적절한 지적에도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사람은 코 고는 버릇이 있는 시골 사람이다. 정작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명에는 쉽게 도취되면서, 자기의 코 고는 습관만은 좀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

진실은 언제나 ‘사이’에 있다. 가치중립적 판단은 으레 회색분자로 내몰리는 시대다. 그래도 변덕 심한 세상에서 사람들의 기리고 헐뜯음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할 것이 못 된다. 맹자는 “과분한 명성이나 평판이 자기의 실력이나 실정보다 이상 되는 것을 군자는 오히려 부끄러워한다”고 했다.

헤르만 헤세의 화법으로 말하면, 하나의 꽃잎, 혹은 길 위의 한 마리 벌레가 도서관의 모든 책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영화감독 팀 버튼의 말을 빌리면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처절한 현실”이 된다. 참, 개똥벌레는 반딧불이다. 개똥을 먹어서 이름이 그렇게 지어진 건 아니다. 반딧불이 특성상 습한 곳을 좋아래 낮 동인 따뜻한 개똥이나 소똥 밑에 숨어 있다가 밤에 빛을 뿜어내는 모습을 보고 선조들이 붙인 이름이다. 반딧불이는 애벌레 시절에  깨끗한 냇가의 다슬기 등을 먹고살면서 에너지를 모아놨다가 성충 때는 이슬만 먹고산다. 쇠똥이나 말똥을 굴리는 쇠똥벌레는 진짜 소똥을 먹는다. 이제 반딧불이와 쇠똥구리 둘 다 보기 힘든 희귀종이 됐다. 쇠똥구리는 멸종 위기종이 됐고, 반딧불이는 천연기념물이 됐다. 불 켜진 가로등과 차량의 불빛으로 가득 찬 도시에선 둘 다 살아남을 수 없다.
<문화평론가 박승규 0109151425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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