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법무법인YK 대표변호사.
이영재 법무법인YK 대표변호사.

1968년 1월 21일. 이른바 김신조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북한 공작원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로부터 불과 300미터 떨어진 곳까지 침투하여 교전을 벌인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놀란 정부는 예비군을 창설하고,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교련을 실시하는 등 여러 대책을 마련하였는데, 그 당시 만들어진 제도 중 현재까지도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주민등록번호 제도이다.

정부는 그해 간첩을 쉽게 색출하기 위해 주민등록법을 개정하여 모든 국민이 태어나자마자 개인 식별번호를 부여하고, 17세 이상이면 생체정보 중 하나인 열 손가락 지문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미국에는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와 유사한 사회보장번호와 운전면허증 번호가 있다. 그러나 이 번호가 없는 사람도 있고, 절대적인 프라이버시로 처리한다. 일본은 2016년부터 납세, 사회보장의 편리를 위해 개인식별번호인 마이넘버 제도를 도입하였다. 정부가 유인책을 써서 신청자가 늘고는 있지만 거부감이 커서 발급을 안 받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미국이나 일본에는 자국민 지문날인 제도가 없다.

주민등록번호는 코로나19 감염병 확산 당시 확진자 동선 추적, 재난지원금 지급 등 긴급한 업무에서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또한 금융거래 실명제 안착에 큰 역할을 했고, 부패와 탈세 방지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안정적 치안 유지에 많은 기여를 한다. 다른 사람으로 행세하기가 어렵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찾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안체계가 허술하여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번호 생성 규칙이 단순하여 번호만 보아도 많은 개인정보를 알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인터넷이 등장한 이후 과도한 주민등록번호 수집과 허술한 관리로 주민등록번호가 대량으로 유출되고 도용되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후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 주민등록번호 변경이 가능해졌고, 주민등록번호 수집,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중 성별을 제외한 6자리에 임의 숫자를 사용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그렇지만 국가가 국민의 생체정보를 수집하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출생신고를 못해서 번호가 없으면 인간으로서 가지는 기본권 보호를 받지 못하는데 이것이 바람직한가라는 근본적 물음도 제기된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008년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에 대한 실무그룹들의 보고'에서 ‘사생활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주민등록제를 재검토하고, 주민등록번호의 사용을 공공서비스 제공과 같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엄격히 제한’할 것을 대한민국에 권고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25일 국가의 지문정보 수집에 관한 법률의 위헌 여부에 관하여 중요한 결정을 하였다. 헌재는 ①주민등록증에 지문을 수록하도록 한 주민등록법 조항, ②주민등록증 발급신청서에 열 손가락 지문을 찍도록 한 주민등록법 시행령 조항, ③지자체장이 이 발급신청서를 경찰에 보내도록 하는 주민등록법 시행규칙 조항, ④경찰이 지문정보를 보관, 전산화하고 수사 목적에 이용하는 행위 모두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결정을 하였다.

①은 지문정보는 개인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징표일 뿐, 인격적·신체적·사회적·경제적 평가가 가능한 내용이 담겨있지 않아 민감 정보로 볼 수 없다며 신원확인의 효율성을 위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을 냈다. 하지만 ③, ④와 같이 경찰이 수사를 위해 지문정보를 받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재판관 9명 중 무려 4명이 위헌이라고 밝혔다. 재판관 4명의 위헌 이유 중 법률에 근거가 없다는 의견, 지문정보는 개인이 임의로 변경할 수 없어 함부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대다수 국민은 국가가 모든 국민의 지문정보 수집을 하고 모든 국민에게 개인식별번호를 부여하는 것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지자체가 주민등록을 위해 받아놓은 17세 이상 모든 국민의 지문이 효율적 수사를 위해 미리 그대로 경찰에 송부되는 시스템은 시행규칙이 아니라 엄격하게 통제되는 명확한 법률에 규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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