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읍내의 특화시장이다. 어물전에서 주꾸미를 사고 광어회와 싱싱한 소라도 골라 담았다. 계절이 다 가기 전에 가을 전어도 주문을 넣는다. 멍게와 해삼은 덤으로 썰어 주는데 웃음까지도 정겹다. 모두 서천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건강한 우리 바다 생선들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네 동서 부부가 김장 농사를 위해 처가에 모여 한 해를 갈무리한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왼쪽에 두고 키 작은 배롱나무 가로수를 달리다 보면 햇살 잘 드는 언덕에 처가가 있다. 충남 서천군 종천면 갯벌체험로 마을이 아내의 고향이고 내 처가다. 거실에 앉아서도 푸른 바다가 보이는 동화 같은 마을이다. 지난봄에 봤던 처가의 동네가 확 바뀐 모습이다. 우선 지붕이 배롱나무꽃의 빛깔인 연분홍으로 칠해져 있고 마을회관도 확장해서 짓고 있었다. 해양수산부가 시행하는 어촌 뉴딜 300 공모사업에 선정돼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사업이란다.
절임 배추가 등장하고 양념까지도 팔려나가는가 하면 아예 배추 산지에서 김장을 버무려 담는 행사도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처가에서의 김장은 아직도 옛 시절 그대로다. 텃밭에 배추를 자르는 동안 큰처남은 경운기에 커다란 수조를 싣고 바다로 나아간다. 배추를 절이기 위해 바닷물을 사용한다. 그렇다고 소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천일염이 적게 들어가고 배추가 익어갈 때 무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큰처남의 논리다.
큼지막한 매트를 펼친다. 무를 채 써는 것은 힘 좋은 네 동서와 큰처남 몫이다. 옆에서는 대파와 쪽파를 썰고 보라색 갓도 다듬는다. 바다를 끼고 있어서일까, 충청도 김장은 뭍에서 보던 김장과는 사뭇 다르다. 절임 때 쓰는 소금물도 바닷물을 사용하고 젓갈 양념도 더 진하게 쓴다. 멸치액젓과 새우젓을 넣는 것은 다를 바 없지만 서천에서는 생새우와 황석어젓 그리고 자하젓을 듬뿍 넣고 김장을 한다.
이 자하젓은 충남 서천 앞바다에서만 잡히는 고유 어종이다. 젓새우의 3/1 크기로 가장 작은 바다 새우다. 어쩌다 서천 처가에서 보내온 이 자하젓을 상에 올리기라도 하면 새우를 갈았느냐고 되묻는 강원도 사람들이니 말이다. 생자하로 먹는 게 대부분이지만 서천 사람들은 이 자하젓으로 자하회무침을 하고 자하고추장짜박이를 만들며 달걀찜에도 자하젓을 고명으로 얹는다. 세종실록에도 이 자하젓이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서천 처가의 김치는 비릿해서 먹기가 거북하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워낙 젓갈김치에 길들여진 때문인지 서천 김장김치에 환장하는 필자가 아니던가. 네 동서 부부와 서천의 큰처남 부부 그리고 서울의 막내처남 부부가 둘러앉아 김장을 버무린다. 늘 그러하듯이 김장할 적에는 수육을 절인 배추 속고갱이에 싸 먹는 맛이 으뜸의 일미다. 붉은 양념에 버무린 김장을 김치통에 넣는 손길이 분주하다. 자하젓으로 버무린 서천 처가의 김장 농사다.
네 동서 부부들은 일산으로, 의왕으로, 분당으로 그리고 서울로 떠나고 셋째 사위는 원주로 향한다. 노랗게 익은 대봉감과 해풍 맞은 서천쌀을 실어주는 큰처남이다. 서천 앞바다의 갈대밭이 멀어지고 있다. 뒤뜰에 감나무가 있는 처가의 분홍빛 지붕 위로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