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학교 전체가 송충이 잡는 날이 있었다. 그날은 반드시 깡통 하나씩을 준비해야 했다. 즉석 나무젓가락을 만들어 송충이 포획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짓궂은 남자애들은 송충이로 여자애들을 괴롭혔다. 아예 징그러워 도망치는 애들도 있었다. 지금은 살충제를 실은 헬리콥터가 산허리를 훌쩍 넘어갔다 오면 ‘방제 끝’이지만, 그땐 송충이가 왜 그리 많았을까? 소나무는 한자로 송(松). 중국 진시황이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다. 소나무 덕에 피할 수 있게 되자, 고맙다는 뜻으로 공작 벼슬을 내렸다. 그때부터 소나무를 ‘목공(木公)’이라 부
꿈에 한 누각으로 들어갔다. 연암 박지원이 18~19세 시절이었다. 마치 관청 건물이나 절간의 대웅전 같았다. 좌우에 비단으로 덮은 상자와 서가가 가지런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 가운데 화병에 꽂힌 채 지붕에 닿을 만한 푸른빛의 새 깃털을 보았다. 공작이었다. 훗날 연암은 생계형 관직에 나가 1791년 경상도 안의 현감으로 부임했다. 연암은 그곳의 아름다운 산수에 무척 만족해했다. 이때의 일을 아들 박종채는 『과정록』에서 이렇게 적었다.“관아 한 곳에는 2층으로 된 창고가 있었는데, 황폐하여 퇴락한지 이미 오래됐다. 연못을 파고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