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이 드리운 뜨락에서 새들이 찍찍 짹짹 울고 있더이다. 나는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이렇게 외쳤지요. 이것이야말로 ‘날아가고 날아온다’라는 글자요, 서로 울고 서로 화답한다’는 글이다. 오색 빛깔을 문자라고 한다면, 그것보다 더 나은 문장은 없겠지요. 오늘 나는 글을 읽었습니다.” <연압집 ‘답경지지이·答京之之二’>

재발견은 성숙이다. 어른이 되어 초등학교를 다시 가본 적이 있는지? 까마득하게 보였던 운동장이 왠지 작아 보인다. 연암 박지원 글의 가장 큰 특징은 일상의 재발견, 사물의 재발견, 자연의 재발견이다. 모든 게 시가 되고 산문이 되고 소설이 된다. 보통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무심코 지나쳐 버렸던 하찮은 것에서 보석을 찾아낸다.

아마 이런 면에선 다산 정약용의 생각도 비슷했다. “어렸을 때 노닐던 곳에 어른이 되어 온다면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고, 곤궁했을 때 지내던 곳을 입신출세해서 찾아온다면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며, 홀로 외롭게 지나가던 땅을 좋은 손님들과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이끌고 온다면 또 따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다산 시문집 수종사에서 노닐은 기>

“저 하늘을 날며 우는 새는 얼마나 생기 발랄합니까? 그런데 우리는 새 조(鳥)라는 한 글자로 적막하게 써서 빛깔을 지우고 소리를 없애 버립니다. 이래서야 마을 모임에 나가는 시골 늙은이의 지팡이에 새겨진 새와 뭐가 다르겠습니까? 어떤 이는 늘 쓰는 말이 싫다고, 가볍고 맑은 글자로 새 금(禽) 자로 바꿔 쓰기도 합니다. 이는 책만 읽고 글 쓰는 자들의 병폐입니다.” <연압집 ‘답경지지이·答京之之二’>

연암이 보낸 편지다. 수신인은 조선 후기 저명한 서예가인 이한진(1732~1815)으로 추정한다. 전서와 퉁소에 능했으며, 홍대용, 박제가, 성대중 등과 교유했다. 새들의 날갯짓이 주는 생명력이나 조잘대는 새의 울음소리가 주는 봄날의 흥취를 과연 어떤 단어로 대신할 수 있을까?

▲ 겸재 정선 ‘독서여가도’ 간송미술관.
▲ 겸재 정선 ‘독서여가도’, 간송미술관.

■ 최고의 독서와 최고의 글쓰기는 자연

“아이가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요. 앞발은 반쯤 꿇고 뒷발은 비스듬히 들고는 손가락을 집게 모양을 해가지고 살금살금 가다가 잡았는가 싶었는데, 나비는 호로록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계면쩍어 씩 웃다가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바로 사마천이 글을 쓸 때의 심정입니다.” <연압집 ‘답경지지삼·答京之之三’>

연암의 눈에 아이가 예쁜 나비를 잡으려는 게 보였다.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소리를 내지 않고 살금살금 다가가서 손가락으로 잡으려는 순간 나비는 달아나버린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남에게 부끄럽지 않았지만, 스스로 부끄럽고 화가 나는 마음. 그게 바로 연암이 글을 쓸 때의 마음이런가. 이 같은 연암을 글을 접하면 턱! 숨이 막힌다. 이런 글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연암의 눈에 비친 자연은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이 말했듯이 경이로움과 불가사의, 그 자체였다. “벌레의 더듬이와 꽃술, 새 깃에 관심이 없는 자는 도무지 문장의 정신(文心)이 없는 것이고, 솥과 그릇의 형상을 음미하지 못하는 자는 한 글자도 모른다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연암집·종북소선자서>

늙은 노인 참새 쫓느라 남녘 언덕 앉았는데
개꼬리 같은 조 이삭에 노란 참새 매달렸네
큰아들 작은아들 모두 다 들에 가고
농삿집 온종일 낮에도 문 닫겼네
솔개가 병아리를 채려다가 빗나가니
호박꽃 울타리에 놀란 닭들 요란하네
바구니인 젊은 아낙 돌다리를 주춤주춤
달랑달랑 따라가는 누렁개와 꾀복쟁이 아이

연암이 쓴 시골집 풍경 ‘전가(田家)’라는 시다. 위 시에서 노인네는 이 농삿집의 시아버지다. 가을 햇볕이 따스하게 드는 남쪽 텃밭에 앉아 있다. 참새 떼가 곡식을 먹어치우기 때문에, 긴 장대 같은 걸 들고 훠이훠이 곡식을 지키기 위해서다. 양지바른 밭에는 잘 영근 조 이삭이 있는 것 같다. 마치 개꼬리처럼 생겼다. 가늘게 휘어진 조 이삭 이 참새 등쌀에 휘청휘청하는 것 같다. 집이 비어서 사립문은 닫혔다.

순간 솔개가 병아리 덮쳤다. 그러나 병아리는 용케 몸을 피해 솔개의 날카로운 발톱을 벗어났다. 놀란 어미 닭은 꼬꼬댁 시끄럽게 울어댄다. 새참을 인 며느리는 조심해서 시내를 건넌다. 벌거숭이 아이와 누렁이는 졸졸 엄마를 따라간다. 연암의 시는 많이 전하지 않지만, 대개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그의 글을 두고 ‘붓이 춤추고, 먹이 살아 움직이는’것 같다는 평을 한다. 연암은 “최고의 독서와 최고의 글쓰기는 자연”이라고 생각했다. 연암은 이 세상의 만물은 글자로 쓰거나 글로 짓기 이전의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그 또한 글자로 쓸 수 없고,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는 글을 남겼다.

“천지 사이에 있는 게 죄다 글의 정(靜)이라네. 이는 방 안에 틀어박혀 들입다 책만 본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닐세.” <소완정기> “무릇 늘 마시던 물도 그릇을 바꾸면 새로운 맛을 느끼고 묵은 길도 경관이 바뀌면 마음과 눈이 함께 옮겨가기 마련.” <백척오동각기>

“방금 전 한 편의 좋은 글이 생각났는데, 애석하게도 그 사이에 그만 저 만길 높이 지리산에 걸려 있지 않겠니? 하지만 어쩌겠나, 어쩌겠어.” 안의 현감 시절, 공무 중에 떠오른 글을 미처 적어 놓지 못하고 있다가 일이 한가해져 붓을 들었더니 글은 이미 달아나고 없다. 글을 잃어버린 안타까움을 저 멀리 내다보이는 ‘지리산에 걸려 있다’고 전전긍긍 대는 모습이다.

▲ 겸재 정선 기념관. ‘독서여가도’ 모형

■ 문자는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그림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연암의 대부분 글은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으로부터 실사(實事)와 구시(求是)를 찾았다. 아들 박종채의 아버지에 대한 일화 한 토막을 통해서도 편린을 엿볼 수 있다. 연암이 연암골에 있을 때 일이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대청에서 내려오지 않는 날도 있었고, 간혹 사물을 응시하며 한참 동안 묵묵히 말이 없을 때도 많았다.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비록 미미한 사물들  풀, 꽃 새, 벌레와 같은 것도 모두 지극한 경지를 지니고 있는 법. 그러므로 이들에게서 하늘이 부여한 자연의 현묘함을 느낄 수 있다.’ 아버지는 매양 시냇가의 바위에 앉으시기도 하고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산보하시다가, 갑자기 멍하니 모든 것을 잊으신 것 같았다. 때때로 신묘한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붓을 들어 메모를 해 잔글씨로 쓴 종잇조각이 상자에 가득 찼다.”

연암이 제자 박제가를 위해 써준 ‘초정집 서문(楚亭集序)’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법고’와 ‘창신’이라는 연암 철학과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거대한 담론이다. ‘법고’와 ‘창신’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넘나들며 연암은 본격적으로 박제가 개인 지도에 선다.

“하늘과 땅이 아무리 오래되었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을 낳는다. 해와 달이 아무리 오래되었다 하더라도 그 빛은 날마다 새롭다. 또 이 세상에 서적이 아무리 방대하더라도 거기에 담긴 내용은 제각각 다르다. 그러므로 날고 헤엄치고 달리고 뛰는 동물들 중에는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고, 산천초목 중에는 반드시 신비스러운 영물(靈物)이 있다. 썩은 흙에서도 버섯이 무럭무럭 자라고, 썩은 풀이 반딧불이로 변하기도 한다. 문자는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그림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공자는 “슬기로운 자는 물을 즐기고, 어진 자는 산을 즐긴다(知者樂水 仁者樂山)”라고 하여 물과 산을 슬기로움과 어짊에 비유했다. 연암 또한 대자연을 사랑하고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한 다정다감한 성품의 인간이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명산대천을 돌아보았고,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중국 동북지방을 편력했다.

연암은 자연을 단순히 태평성대에 비유하는 관념적 심미관을 취하지 않았다. 유희나 도락에 치우지지도 않았다. 연암은 자연을 인간과 같은 위치에서 바라보았다. 자연 속에서도 삶의 지혜를 이끌어낸다는 면에서 현실주의자요, 리얼리스트였다.

▲ 신사임당의 ‘초충도’ 욕심 없는 군자의 상징 매미, 부지런한 벌, 달팽이, 개구리는 귀하게 될 자식을 기원. 한 쌍의 나비는 부부간의 장수의 기쁨. 원추리는 걱정을 없애주는 꽃이라 하여 여인들의 방 앞에 많이 심었다. 국립중앙박물관.
▲ 신사임당의 ‘초충도’ 욕심 없는 군자의 상징 매미, 부지런한 벌, 달팽이, 개구리는 귀하게 될 자식을 기원. 한 쌍의 나비는 부부간의 장수의 기쁨. 원추리는 걱정을 없애주는 꽃이라 하여 여인들의 방 앞에 많이 심었다. 국립중앙박물관.

■ 닭 울음소리는 임금에게 간언하는 소리

“…바야흐로 달은 완연히 서편에 기울어 마지막 붉은빛을 사르고 있다. 새벽 별빛은 오히려 휘황하여 흔들리며 둥글고 커져서, 내 얼굴에 방울방울 떨어질 것 같다. 이슬이 짙게 내려, 옷과 갓이 다 젖었다. 흰 구름이 동쪽에서 일어나더니 둥실둥실 다리를 가로질러 천천히 북쪽으로 옮아갔다. 구름 사라진 동쪽 숲은 어느새 미명의 새벽빛을 받아 짙은 푸르름을 뽐내고 있다.” <연암집 ‘취해서 운종교를 거닐다’(醉踏雲從橋記) 중>

37세가 된 1773년 무렵, 연암은 이덕무 등과 벗과 함께 통행금지가 내려진 밤 12시가 넘어 종각 아래서 달빛을 받으며 거닌다. 수표교에 이르러 다리를 죽 뻗어 걸치고는 야경을 감상했다. 연암이 본 것은 아름다운 달빛만이 아니었다, 달빛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것도 잠시, 연암은 개구리 소리, 매미소리, 닭의 소리에서 또 다른 소리를 ‘재발견’한다.

“개굴개굴 개구리울음소리는 시끄럽기가 마치 말귀를 못 알아듣는 아둔한 고을 원님에게 백성들이 몰려들어 제각기 악다구니하는 듯하고, 매앰매엠 매미소리는 무서운 훈장님의 서당에서 시험 보는 날 학생들이 다투어 암송 공부를 하는 것만 같다. 새벽을 깨우는 닭 울음소리는 임금에게 간언하는 일을 자기의 소임으로 여기는 한 선비의 곧은 목소리만 같았다.”

말을 섞어 글을 쓴다는 것은 몸을 섞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이처럼 연암의 스타일은 한두 단어로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다. 놀랄 만큼 사실적인 묘사를 선보이고, 수시로 통념을 뒤집는다. 연암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또한 똥 치기에서부터 몰락 양반, 서얼, 음악가, 서예가, 과부 등에 이를 정도로 매우 다양하고 폭넓게 나타난다.

글 짓는 법을 병법에 비유하며 고정된 작법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함을 강조하기도 하고, 사슴과 파리를 예로 들어 사물의 크고 작음이 상대적임을 역설한다. 말년에는 눈이 어두워 안경을 써야 했다. 이빨도 빠져 치통으로 고생하는 자신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묘사하기도 하고, 벗과 가족을 잃은 슬픔을 절절하게 쏟아내기도 한다.

“우리들은 냄새나는 가죽 부대 속에 문자 몇 개를 지니고 있는 것이 남들보다 조금 많은 데 불과하오. 그러니 저 나무에서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땅속에서 지렁이가 소리 내는 것이 어찌 시를 읊고 책을 읽는 소리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소.” <연암집 ‘여초책(與楚幘)> ‘가죽 부대’는 불교에서 사람이나 가축의 몸을 천시하여 부르는 말. 연암은 그렇게도 자신에게 엄격하고 겸손했기에 비루한 세상을 미련 없이 희롱할 수 있었다.

<문화평론가 박승규 0109151425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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