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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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역사학자이며 저널리스트인 하랄트 얘너는 최근 번역 출간된 '늑대의 시간'(위즈덤하우스)에서 1955년까지 패망 후 10년간 독일 사회가 겪은 이런 혼돈과 분열, 독일인의 의식 세계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흔히 일본과 비교해 독일을 과거사 청산의 모범국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책에 따르면 패전 후 10년간 독일이 보여준 모습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반인륜 범죄를 기억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수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반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5억㎥의 폐허 더미 속에서 무정부 상태와 다름없이 일상적인 생존 투쟁을 벌여야 했던 독일인은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생각을 회피했다.

이들은 1946∼1947년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린 겨울을 비참하게 묘사했으며 스스로를 희생자로 여겼다.

책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의식적 억압과 집단적 묵살'이 종전 이후 지속됐다고 평가한다. 다수의 독일인이 전쟁 범죄를 직시하게 된 것은 1963년 아우슈비츠 재판이 시작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은 해체되고 삶의 기반을 파괴됐지만 독일인들은 포성이 멈추자 다시 서로 어울려 다녔고 혼란 속에서도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 모험을 시도했다. 베를린에서 비서로 일하던 18세 여성 브리기테 아이케의 일상에서 불행을 딛고 새로움과 행복을 모색하는 당시 젊은이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브리기테는 독일이 항복을 선언한 지 17일 만에 다시 영화관에 가서 '그란트 대위의 아이들'이라는 영화를 보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에는 춤을 추러 간다. 브리기테는 1945년 여름에 현대적 기준으로 보면 클럽이라고 할 만한 유흥업소 13곳을 방문했고 풋내기 남자들, 추근대는 미군, 매상을 올리기 위해 업주가 고용한 호객꾼 등과 접촉하거나 춤을 췄다. 전후 영화에는 지하 세계의 범죄자나 졸부와 같은 인간이 파티를 즐기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현실에서는 가진 것이 없는 이들도 파티를 즐겼다고 책은 전한다.

연합국은 독일 국경을 넘을 때부터 독일인의 정신 개조를 위한 여러 작업을 추진한다. 독일에서 망명한 이들은 동족들에게 항복하라고 설득하는 데 앞장섰다. 10명으로 구성된 올브리히트 그룹은 새로운 행정부를 구성한 믿을만한 독일인을 물색하는 한편 주민들에게 소련군을 믿고 나치에 부역한 이들을 신고하라고 당부했다.

그룹은 반파시스트 언론사 발족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베를리너 차이퉁'은 독일이 패전한 지 약 2주 만인 1945년 5월 22일 창간호 10만부를 발행했다. 미군은 젊은 유대인을 포함한 독일 망명자 그룹으로 구성된 심리전단을 활용하기도 했다.

책은 독일인이 나치 정권을 탄생시킨 심리 상태에서 벗어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급격한 현실 자각이었다고 규정한다. 연합국 통치와 함께 유입된 새로운 생활 방식의 매력, 암시장을 통한 재사회화, 실향민을 통합하려는 노력, 추상미술이 낳은 논쟁, 새로운 디자인이 주는 자극 등이 여러 요소가 독일인의 심리 변화를 촉진하고 민주주의 담론도 고조했다는 것이다.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통해 독일은 전후 시대를 사실상 마무리한다. 1960년대 후반 세계 곳곳으로 사회 운동이 번지는 가운데 서독의 젊은 세대는 '나치 세대에 불복종 운동을 벌이자'며 부모 세대를 비난하고 과거 청산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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