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일보 차지현 기자] 단국대가 조선 후기 실학자 겸 소설가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이 쓴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수록되지 않은 43일간의 청나라 연행일정이 기록된 '연행음청(곤)(燕行陰晴)(坤)'을 공개한다.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은 8일 죽전캠퍼스 국제관 101호에서 학술대회를 열고 연암 박지원의 친필 초고본인 '연행음청(곤)(燕行陰晴)(坤)'을 비롯해 '열하일기' 초고본 계열의 이본(異本)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연행음청(곤)'은 박지원이 연행서 돌아와 정리한 초기 연행록이 포함된 친필본으로 현전하
[충남일보 서세진 기자] 충남 당진시는 오는 28일부터 29일까지 합덕제 일원에서 수리 농경 역사를 주제로 한 두 번째 문화재야행을 개최한다.두 번째 야행은 여름과 가을 2회 진행하며 야경(夜景), 야로(夜路), 야사(夜史), 야화(夜畵), 야설(夜說), 야식(夜食), 야시(夜市), 야숙(夜宿) 총 8야로 구성되어 당진의 문화유산과 생태 자연경관을 다양한 체험형 행사로 진행한다.합덕제는 여름의 연꽃이 장대한 수변공원을 조성하며 양수리 두물머리 연꽃단지와 비견되는 수도권에서 언제든 가깝게 갈 수 있는 관광지로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충남일보 서세진 기자] 충남 당진시가 운영중인 문화재청 공모사업 ‘2023년 향교 서원 문화재 활용사업’이 참가자들의 큰 호평을 얻고 있다.지난달 12일 시작한 올해 문화재청 공모에 선정된 향교 서원 문화재 활용사업인 ‘면천향교에서 다시 피어난 연암 이야기’는 마을 교육공동체 어울림협동조합 주관으로 면천군수로 재직한 연암 박지원과 면천향교 유생의 기록을 스토리텔링화 해 3가지 주제로 선보인다.‘향교 유생, 면천이의 하루’는 복장을 갖추고 직접 향교 유생이 되어 현재 학교와 조선 시대 향교의 차이점 등을 미션으로 알아보면서 향교 유
[충남일보 서세진 기자] 충남 당진시는 오는 9월30일부터 10월2일까지 합덕제 일원에서 수리 농경 역사를 주제로 한 첫 번째 '문화재 야행'을 개최한다.야행은 야경(夜景), 야로(夜路), 야사(夜史), 야화(夜畵), 야설(夜說), 야식(夜食), 야시(夜市) 총 7야로 구성돼 당진의 문화유산과 생태자연 경관을 다양한 체험형 행사로 진행한다.특히, 전국 문화재 야행 최초로 메타버스를 활용한 실감형 콘텐츠는 최첨단 ICT기술을 활용한 문화유산 프로그램으로 눈길을 끈다.당진 면천군수였던 연암 박지원을 디지털 휴먼 역사해설사로 등장시킨다.
임인년 검은 호랑이의 해가 밝았다. 그런데 학교에는 어찌 된 일인지 호랑이 선생님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1980년대 한때는 대한민국 최초의 학교 중심 교육 현장 드라마로 ‘호랑이 선생님’이 인기리에 방영될 정도로 초중고를 막론하고 각 학교마다 호랑이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고 그 명성이 드높았다.호랑이는 용과 비견할 정도로 강인함과 용맹함을 지닌 신성한 동물이면서도 우리의 다양한 구전설화, 속담, 민화 등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친숙한 동물이다. 그래서 아직도 새해가 되면 현관이나 대문에 호랑이가 그려진 ‘문배도’를 붙여 잡귀와
"여종 강비의 남편 한복이 그물을 가지고 연못에 가서 고기를 잡아 붕어 17마리를 얻었기에 저녁밥 지을 쌀을 주고 바꿨다. 다음 날에 다시 잡으면 식혜를 담갔다가 한식 제사에 쓰련다."조선시대 학자인 오희문(1539∼1613)은 임진왜란 시기에 쓴 일기인 '쇄미록'에 이 같은 기록을 남겼다. 그는 장을 담그기도 했는데 오늘날 메주에 해당하는 말장과 소금의 비율을 상세히 적어놓았다.장 담그기는 기행문 '열하일기'로 유명한 조선 후기 인물 연암 박지원(1737∼1805)도 했다. 박지원은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홀로 자식을 뒷바라지했다
“아, 애통한 일일세! 내 일찍이 친구를 잃은 슬픔이 아내 잃은 슬픔보다 훨씬 크다고 말한 적이 있었네. 아내를 잃은 자는 두 번, 세 번 재혼할 수도 있고 첩을 얻는다 해도 안 될 것이 없네. 마치 솔기가 터지고 옷이 찢어지면 깁거나 꿰매면 되고, 기물이 깨지거나 이지러지면 새것으로 바꾸면 되는 것과 같은 걸 테지. 그러나 어찌 친구와 같겠나.”연암 박지원이 어떤 이에게 보낸 편지다. 그는 1792년 1월, 경남 함양군 안의 현감에 부임해 1796년 2월까지 있었다. 이 편지는 1793년 1월에 세상을 뜬 이덕무(1741-1793
“문 앞에는 빚쟁이들이 기러기처럼 늘어섰는데, 방안에는 취한 사람들이 고기 꿰미처럼 잠자고 있네.” 당나라 때 한 호걸이 지은 시입니다. 요즘 저는 찬 방에서 홀로 지냅니다. 담담한 품은 마치 참선에 든 중과 같습니다. 다만 문 앞에 기러기처럼 줄 선 자들 눈빛이 너무 가증스럽군요. 매번 비굴한 말씀을 드릴 때마다 등(滕)·설(薛)의 대부를 떠올리곤 합니다.벼슬에 오르기 전 연암 박지원이 매형 성백에게 보낸 편지다. 결론부터 말하면 돈 좀 꿔달라는 SOS. 연암은 이런저런 문헌과 고사를 들어 빙빙 돌려 말한다. ‘돈’이란 말은 절대
“귀하게 되면 인색해지고, 부유해지면 더러워지고, 오래 살면 포악해진다. 인자하고 진실한 자에겐 요절이 뒤따르고, 깨끗하여 찌꺼기 없는 자에겐 가난이 깃든다. 베풀기 좋아하고 주는 것 많은 자는 높은 벼슬이 없다. 이 여섯 가지 덕 중에 내 장차 어느 것을 택할 꼬.”연암 박지원의 중에 나온 글이다. 에서 근간(根幹)을 이루는 부분은 과 라고 할 수 있다. 연암의 초기작부터 만년작까지 망라하여 전체 산문의 절반이 넘는 글들이 여기에 정선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상각(煙湘閣)
연암 박지원은 에서 “내 평생 기이하고 괴상한 볼거리를 열하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 그 이름을 알지 못했고,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기록하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회고했다. 코끼리를 사육하는 ‘상방(象房)’이나 호랑이 우리 ‘호권(虎圈)’은 북경을 찾는 사신 일행이 즐겨 찾은 관광지의 하나였다. 연암이 중국에서 본 동물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코끼리였다. 연암은 에서 두 차례에 걸쳐 코끼리를 설명했다. 열하의 피서산장에서 황제의 의장대로 부리는 코끼리를 열
“아, 슬프다! 한나라 낙랑군이 있었던 평양은 지금 평양이 아니라 요동의 평양이었다. 그런데도 한사군을 압록강 안으로 몰아넣어 조선의 강토가 줄어들었도다.”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 제1권 도강록의 한 구절이다. 240년 전의 글이다. 북한 평양을 낙랑군이라고 못 박은 지금 강단 사학계와 평행이론이 느껴진다. 연암의 북경 여행길은 탄식으로 시작된다. 연암이 44세 때인 1780년(정조4) 6월 24일(음력) 때였다. 청 건륭제의 70세 생일 축하사절단으로 중국에 가는 팔촌 형 박명원을 따라 연암은 6개월간 6천 리 여정에 나섰다.
꿈에 한 누각으로 들어갔다. 연암 박지원이 18~19세 시절이었다. 마치 관청 건물이나 절간의 대웅전 같았다. 좌우에 비단으로 덮은 상자와 서가가 가지런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 가운데 화병에 꽂힌 채 지붕에 닿을 만한 푸른빛의 새 깃털을 보았다. 공작이었다. 훗날 연암은 생계형 관직에 나가 1791년 경상도 안의 현감으로 부임했다. 연암은 그곳의 아름다운 산수에 무척 만족해했다. 이때의 일을 아들 박종채는 『과정록』에서 이렇게 적었다.“관아 한 곳에는 2층으로 된 창고가 있었는데, 황폐하여 퇴락한지 이미 오래됐다. 연못을 파고 아래
우연히 거칠고 못난 성질을 이야기하다가, 제 자신을 사슴에 비유했군요.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사슴이 잘 놀란다는 의미이지, 감히 제가 잘난체하거나 크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지금 그대의 편지에서 스스로 말꼬리에 붙은 파리에 비유하고 계시니, 어찌 그렇게 자신을 하찮게 여기시나요? 만약 그대가 작게 되기를 바란다면 파리도 오히려 크지요. 개미가 있지 않습니까? 제가 일찍이 약산(평안도 영변)에 올라 산 아래 고을을 굽어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달음질치고 땅에 붙어 꿈틀꿈틀하는 모습이 마치 개미집의 개미와 같더군요. 바람이 한번 휙
작은 추위라는 뜻을 지닌 소한(小寒)은 계절을 24개로 나눈 절기 중 하나다. 이름으로만 보면 소한 다음 절기인 대한(大寒) 때가 가장 추워야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소한 무렵이 가장 춥다. 소한 무렵은 정초 한파(正初寒波)라 불릴 정도로 강추위가 몰려오는 시기다. 소한과 관련된 속담으로는 “소한의 추위는 꿔다 가도 한다”라는 말이 전한다. 보통 소한이 가장 추울 때라서 소한 때만 되면 추워진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다.” “소
“지금은 토요일 오후, 동학사엔 함박눈이 소록소록 내리고 있다. 새로 단장한 콘크리트 사찰은 솜 이불을 덮은 채 잠들었는데, 관광버스도 끊긴 지 오래다. 등산복 차림으로 경내에 들어선 사람은 모두 우리 넷뿐, 허전함조차 느끼게 하는 것은 어인 일일까?”수필가 이상보 선생의 첫머리다. 계룡산에 갈 때마다 떠오르는 구절이다. 동학사에서 1.7km 오르면 갑사 가는 길목에서 애틋한 ‘남매탑’을 만날 수 있다. 한 수도승이 목에 큰 뼈가 걸린 호랑이를 구했다. 은혜를 입은 호랑이가 아름다운 처녀를 물어다 놓고 갔다. 처녀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내가 탄 말은 털빛이 붉고, 갈기가 검다. 이마는 희고, 다리는 날씬하다. 발굽은 높고, 허리는 짤막하다. 두 귀는 쫑긋한 품이 참으로 단걸음에 만 리 길이라도 달릴 성싶다. 창대(마부 이름)는 앞에서 말고삐를 잡고, 장복(하인 이름)은 뒤에서 따라온다.안장 양쪽엔 주머니 한 쌍을 달았다. 왼쪽은 벼루, 오른쪽에는 붓 두 자루·먹 한 장·작은 공책 네 권에 이정표를 넣었다. 행장이 이렇듯 단출하니, 국경에서 짐 수색을 아무리 엄하게 한들 염려할 게 없었다.” 여정의 시작이다. 연암 박지원이 연행
“그걸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발굽이 두 쪽이어서 말이라고 하기 어렵고, 머리에 뿔이 없으니 소라고 하기도 어렵고, 양과 얼굴은 닮았지만, 털이 곱슬곱슬하지 않고, 또 등에 두 개 혹이 있으니 양도 아니고, 거위처럼 머리를 들고 장님처럼 눈을 떴습니다.”1780년 연암 박지원의 청나라 사신 길. 연암은 영안교를 건너 심양을 지나면서 깜빡 졸았다. 그때 몽골인이 몰고 가는 낙타를 지나쳐 버려 몹시 아쉬워했다. 호기심 많고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연암은 하인 창대에게 낙타 생김새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연암은 “낙타가 틀림없다”면
“경상도 아이들은 새우젓을 모르고, 강원도 사람들은 산사나무 열매(아가위)를 절여 장을 대신한다. 평안도 사람들은 감과 감귤의 맛을 분간하지 못하고, 바닷가 사람들은 새우나 정어리를 밭에 거름으로 쓴다. 그런데 어쩌다 이것들이 서울에 오면 한 움큼에 한 닢 값이니 어찌 그리 귀함은 무슨 까닭인가?”연암 박지원은 열하를 오가며 갖가지 수레를 세심히 관찰한다. 당시 북경에는 오늘날 고급 승용차와 같은 ‘태평차(太平車)’에서부터 화물 수송용 ‘대차(大車)’, 장사용 ‘독륜차(獨輪車)’ 군사용 ‘포차(砲車)’ 등 수없이 많은 종류의 수레가
조선 전기 문신인 화담 서경덕은 기생 황진이와의 화제를 뿌린 인물이다. 약간 도가적 삶을 살았던 그가 어느날 밖에 나갔다가 우연히 제 집을 찾지 못하고 길가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하여 “그대는 어찌 울고 있는가?”하고 물었다. 그는 “저는 다섯 살 때 장님이 되어 지금까지 20년을 보냈습니다. 오늘 아침에 집 바깥으로 나왔는데, 갑자기 하늘과 땅과 온갖 사물을 환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기쁜 마음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밭두렁 길은 갈림길이 많고 대문들은 서로 같아 제 집이 어느 곳인지 분별할 수가 없습니
태초에 원숭이가 있었다. 요즘에는 성경 에 나오는 신에 의한 인간의 창조를 사실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있다면 과학적 지식에 눈과 귀를 닫고 사는 사람이다. 성경은 믿음을 요구하지만 과학은 증거로 대답한다. 우주의 탄생부터 지구의 생성, 인류의 기원과 생물의 진화 과정이 학문으로 정립됐다. 정말 인간의 조상이 침팬지인가? 인간과 침팬지는 유전적으로 겨우 1.6%의 차이가 나는데, 정확이 어떤 유전자가 다른 걸까? 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침팬지와 인간의 차이, 인간의 진화와 지구의 지배 과정,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