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지리산이다. 백두대간의 출발점이자 끝인 지리산은 우리 역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장구한 지리산의 역사는 멀리 삼한시대까지 올라간다. 세력 다툼에 밀린 마한의 한 왕조는 오늘날 뱀사골 입구까지 쫓겨왔다가 최후를 맞았다.

지금까지 남은 지리산 곳곳의 명칭에 당시의 위급한 상황이 남아 있다. 달궁에 은거지를 마련한 마한 왕조는 사방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 수자리를 만들었다. 북쪽 고개에는 8명의 병사를 배치했는데, 지금의 ‘팔랑치’다. 서쪽은 정장군이 지켜서 ‘정령치’이며, 동쪽 황장군이 있던 곳은 ‘황령’이 됐다.

남쪽은 성씨가 각기 다른 3명의 장군이 지키게 하여 ‘성삼(姓三)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이때 쌓은 성의 흔적들이 고리봉에서 정령치, 만복대로 이어진 능선에 아직 남아 있다.

지리산 동쪽 산청 왕산에는 금관가야의 마지막을 지킨 구형왕릉이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한다. 김유신 장군의 증조부이자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무덤은 우리나라 유일의 피라미드형 돌무덤이다.

지리산 심마니능선 아래 이끼폭포.
지리산 심마니능선 아래 이끼폭포.

지리산 연봉(智異連峰) 가운데 ‘심마니 능선’이라 불리는 등산 코스가 있다. 반야봉에서 뱀사골과 나란히 흘러내린 능선으로 반선으로 이어진다. 원래 주민들이 약초나 산나물을 채취하러 다니던 은밀한 길이었기에 등산 지도에는 표시돼 있지 않다.

말 그대로 산삼이 많이 발견되는 지역이라 심마니 능선이라 이름 붙여졌다. 유명한 달궁계곡과 뱀사골계곡을 거느리면서 많은 지계곡과 지능선이 있다.

산삼은 중국 춘추 전국시대부터 귀중하게 여겨온 약초다. 성장이 늦고, 뿌리가 곧게 내려가다가 기듯 자란다. 그늘지고 서늘한 해발 800m 이하 지역에만 자생한다고 알려져 왔다. 우리나라 산삼은 예부터 영약(靈藥)으로 꼽혔다.

지리산 전설에는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려고 삼천 동자를 보낸 곳이라고 전한다. 지리산신 ‘방장’은 불로장생 묘약인 불로초를 지키는 산신령이다. 지리산 천왕봉 전설 속 영원한 젊음을 간직한 천왕성모의 비결 역시 산삼 때문이다.

요즘 등산을 겸해 약초 산행 인구가 늘고 있다. 그러나 일석이조 욕심을 부리다가 몸을 다치는 경우도 많다. 전문 산악인 수준이 아니면, 약초 산행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심마니 능선은 예상보다 산세가 험난하다. 잘못 길을 잃으면 조난을 겪기 쉬운 곳이다. 원래, 약초꾼이나 심마니가 다니는 길은 험하다. 심마니 능선은 지리산이 국내 최대의 산삼 자생지였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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