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UST 교수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UST 교수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UST 교수] 대부분의 농작물은 수확 후에도 호흡작용을 통해 보유 영양분의 소모와 노화가 진행돼 상품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국내 농산물 생산량의 약 30%가 수확 후 관리미흡 등으로 손실돼 선진국 손실률 5%에 비하면 매우 높다. 따라서 농산물의 수확 후 관리는 제2의 생산 활동으로 불릴 정도로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 곡물자급률 23%(사료용 곡물 포함), 칼로리 자급률 38%는 국가 식량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이라 식량안보 차원에서 농산물 생산증진과 함께 효율적인 농산물 저장관리가 필요하다.

농산물저장을 위해서는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저장고가 필요한데 여기에는 많은 비용과 에너지가 소요된다. 따라서 당연히 농산물의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기후 위기 시대 저에너지로 농산물 저장관리 방안으로 동굴(터널) 이용을 제안한다.

필자가 농산물 저장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고구마를 연구하면서이다. 고구마는 척박한 토양에도 비교적 잘 자라고 최고의 건강식품으로 재평가되면서 식량안보와 영양안보에 중요하다. 그러나 열대기원의 고구마를 연중 이용하려면 겨울철 저장을 위해 13~15℃ 저장고를 만들어야 하는데 많은 에너지와 공간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고구마를 저에너지로 효율적으로 저장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필자는 세계 고구마 생산의 약 70%를 차지하는 중국과 협력하면서 많은 고구마 연구기관과 생산지역을 방문했다. 그 중에서 최근 지하 10m 시설에서 효율적으로 고구마를 저장하는 곳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아직 동굴을 이용한 고구마 저장이 거의 없음을 반증한다.

국토의 약 70%가 산지인 우리는 폐쇄된 광산 동굴과 터널이 농산물 저장고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지금은 농산물저장고를 위해 동굴을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 ‘2018년 한국광해관리공단 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4677개의 폐 광산이 있으며 충청남도(835개), 강원도(828개), 경상북도(700개) 순으로 많다. 이들 폐 광산 가운데 조금만 리모델링하면 농산물 저장고로 활용할 수 있고 레스토랑 등 관광자원화도 가능하다.

경기도 ‘광명동굴(구 시흥광산)’은 폐 광산을 이용해 관광자원화 한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1912년 일제가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개발을 시작한 후, 1972년 폐광된 후 40여 년간 새우젓 창고로 사용했다. 2011년 광명시가 광명동굴을 매입해 역사, 문화, 관광명소로 탈바꿈시켰다. 광명동굴은 산업유산으로서의 가치와 문화적 가치가 결합된 대한민국 최고의 동굴테마파크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청도 와인터널’도 폐 터널(약 1㎞)을 이용한 것이다. 남성현 터널이 경사와 먼 운행 거리 등으로 인해 1937년 사용이 중지돼 특별한 용도 없이 버려져 있었다. 이곳을 2006년 청도 특산품인 감(반시)으로 만든 와인의 숙성저장 창고뿐만 아니라 복합 문화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외부 온도에 큰 관계없이 연중 15℃ 온도와 70~80% 습도를 유지해 감와인 숙성 및 보관에 최적이며 시원한 곳에서 와인을 맛볼 수 있어 인기가 많다.

‘무주 머루와인동굴’은 적상산 중턱 450m에 위치해 있는 무주양수발전소 건설 때 굴착작업용 터널로 사용하던 곳을 무주군이 지역의 머루농가에 희망을 주고자 2007년 임대, 리모델링해 운영하면서 관광명소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냉장고나 냉동시설이 없던 시절, 선조들은 석빙고를 지어 여름에도 얼음을 이용했다. 인위적으로 동굴을 만들어 이용하는 사례도 많다. 함양 머루와인동굴, 김해 와인동굴, 밀양 와인터널 등이 있다. 곤지암리조트 내에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최상급 와인전문 동굴 레스토랑이 있다. 와인보관의 최적의 온도와 습도에서 관리되는 와인을 이태리풍의 다양한 음식과 즐길 수 있다. 이 동굴 레스토랑은 전 세계 레스토랑을 대상으로 하는 평가에서 최고 수준의 와인레스토랑으로 수년간 연속 선정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필자도 곤지암 동굴 레스토랑을 이용한 추억은 아직도 생생하고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으로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그린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기후위기시대 어떻게 하면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면서 식량안보를 구축할 것인가에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산지가 많은 우리는 동굴을 이용하면 저에너지로 최적의 농산물 저장뿐만 아니라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 관광자원화로 일석삼조의 효과가 기대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동굴(터널)을 이용한 농산물 저장에 관심을 가지고 농가를 지원해 K-농업을 육성할 때이다. 농업은 선진국의 기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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