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UST 교수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UST 교수

우리나라는 크고 작은 산성이 1000여개 있다. 충남이 가장 많은 약 185개의 산성이 있고 대전도 28개가 있다. 이 가운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문화재(보물, 사적, 기념물)로 검색되는 산성은 235개이며 충남과 대전은 각각 32개와 19개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산성은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적의 공격력을 약화시켜 항전과 동시에 민간인 피난처로 이용돼 왔다.

충청의 산성은 주로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이 많다. 국가와 지방정부는 문화재 보호와 함께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많은 예산으로 산성을 복원하고 있다. 공주 공산성, 예산 임존성, 세종 운주산성, 대전의 보문산성과 계족산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산성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산성은 당시 최고의 과학기술을 활용해 축성됐다. 주로 돌(석재)로써 견고하게 축성한 우리의 산성은 중국이나 일본의 것보다 과학적으로 우수하다. 옛날은 물론 지금도 전쟁과 무역에서 첨단 과학기술이 중요하다. 그런데 산성을 탐방하면 산성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과학기술과도 만날 수 있다.

특히 젊은 밀레니얼(1982~2000년 출생) 세대들은 역사에 관심이 부족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가족, 친구와 함께 산성탐방을 통해 건강도 챙기고 자연을 즐기면서 역사를 익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백제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게 한강유역을 빼앗기기 전까지는 막강한 국가로서 대외적으로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활발한 국제교역을 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으로 백제는 475년 한성(지금의 서울)에서 웅진(공주), 537년 사비성(부여)으로 수도를 옮긴다. 수도를 옮긴 후 성왕, 무령왕, 무왕은 백제를 재건하는데 노력했다.

공주 무령왕릉, 부여 금동대향로, 익산 미륵사지 석탑 등은 백제의 힘과 문화의 우수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백제영토에 산성이 많은 것은 백제가 고구려, 신라, 당나라의 공격을 막고 백제부흥을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 생각된다.

나당연합국에 의해 660년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은 평소 신뢰하던 성주(예식진)가 있는 웅진성으로 피신한다. 그런데 웅진성에 피신한 지 5일 만에 저항도 하지 않고 의자왕은 의문의 항복을 하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백제는 사비성이 함락됐을 뿐 지방에는 많은 백제군이 포진해 있었다.

최근 중국에서 발견된 예식진의 묘지석에서 그는 백제를 배신한 대가로 당나라에서 정3품관까지 올랐음이 밝혀졌다. 예식진의 배신은 이후 동북아시아의 역사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갑작스러운 의자왕의 항복으로 각지에 남아있던 백제세력은 흑치상지, 귀실복신, 승려 도침 등이 중심이 되어 백제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사비성 남부 주류성에서 부흥운동을 주도하던 귀실복신과 승려 도침은 내부갈등으로 나당연합군에게 패한다. 임존성을 중심으로 부흥운동을 주도한 흑치상지는 백제를 등지고 663년 나당연합군과 함께 임존성을 함락시키는데 참가한다. 당에 귀화한 흑치상지는 서쪽 토번과 북방 돌궐을 크게 무찌르는데 공헌해 대장군(정3품) 직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20세기 중국 낙양 북망산에서 발견된 그의 묘지석에 적혀있다. 이로써 찬란하던 700여년의 백제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적은 내부에 있다는 말이 떠오르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고양시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지의 하나로 유명하다. 적은 병사로 대군의 왜적을 물리친 행주산성 전투는 권율장군의 뛰어난 전략과 전술, 민∙관∙군∙승려∙부녀자 등이 혼연일체가 되어 싸웠다. 무엇보다 과학적으로 설계된 신기전, 총통기, 수차석포, 비격진천뢰 등 각종 화약을 사용한 최신무기가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했다.

이처럼 우리의 산성은 역사가 깃든 곳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 미중패권시대 우리가 현재 처해 있는 주변국과의 관계는 결코 녹록하지 않다. 중국은 역사 이래 한 번도 한반도 정복을 포기한 적이 없고, 지금도 동북공정을 통해 고조선, 부여,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중국은 2009년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산해관에서 압록강 호산산성까지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마한, 가야, 백제 등 한반도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고도 임진왜란, 일제강점 등으로 우리를 끝까지 괴롭히고 있다. 그런데 항전 의지를 보여주는 우리의 많은 산성은 수나라, 당나라, 몽골, 왜(일본)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중국, 일본을 정확히 이해하고 다시는 이들에게 당하지 않고 함께 갈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산성을 단순한 트레킹 코스로 여기는 것뿐만 아니라, 산성에 얽힌 슬픈 전쟁의 역사를 통해 다시는 외세침략을 받지 않도록 하는 유비무한(有備無患)과 온고지신(溫故知新) 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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