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 시인 · 두원공대 겸임교수
최광임 시인 · 두원공대 겸임교수

지난 토요일 정선 덕산기에서 강기희 소설가의 첫 시집 ‘우리는 더 뜨거워질 수 있었다’ 출간기념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쓴 시 ‘덕산기로 가자’에 이지상 가수가 곡을 붙여 발매한 이지상 6집 앨범 ‘나의 늙은 애인아’ 기념 콘서트를 위해 다녀온 지, 2년 만입니다. 

덕산기는 오지 중의 오지이자 은둔의 계곡입니다. 차가 들어가기 쉽지 않고 휴대전화 통화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지리상 정선읍에 속하지만, 정선읍 여탄리에서 덕우리를 거쳐 화암면 북동리로 뻗은 10여km의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더는 차로 갈 수 없는 길이 나옵니다. 솔밭밑민박집 아래 주차한 후, 굵은 돌길을 1km가량 걸어야 합니다. 계곡이라 하지만 물은 흐르지 않습니다. 덕산기계곡은 건천입니다. 비가 오면 물이 불었다가 이내 하류로 흘러가 버리곤 합니다. 여름철엔 급격히 불어난 물로 고립되기도 합니다. 도깨비가 출몰했다는 도깨비소를 지날 때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철벅 철벅 물길을 건너야 합니다. 그렇게 10여 분 걸어가다 보면 숲속 책방이 나옵니다. 강기희 소설가와 유진아 동화작가 부부가 운영합니다. 

저는 덕산기에 반해 강기희 소설가와 유진화 동화작가에게 디카시 청탁을 하고는 했습니다. 기대에 반하지 않는 덕산기의 계절과 부부의 일상이 담긴 디카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강기희 작가는 평소 시집을 한 권 낼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간 강기희 작가에게 야속하게도 삶에 곡절이 생겼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폐암 환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첫 시집은 투병 중에 나왔습니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첫 시집이자 마지막이라는 시집의 해설을 영광스럽게도 제가 맡았습니다. 
  
  그대 덕산기에 오시려거든
  진달랫빛 고운 봄날 돌단풍꽃처럼 곱고 수줍은 웃음 안고 오시라
  혹여 못 다한 반역 있다면
  문지방 고개쯤에다 내려놓고 나비처럼 봄바람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오시라

  그대 덕산기에 오시려거든
  여름이 빚어낸 옥빛 물 따라 철벅철벅 걸어오시라
  혹여 세상과의 절연이나 고립을 꿈꾼다면
  폭우 쏟아지는 날 빗속을 뚫고
  금강모치처럼 산메기처럼 도깨비 소를 거슬러 오시라

  그대 덕산기에 오시려거든
  물매화가 꽃대를 밀어 올리기 시작할 무렵 빈 마음으로 오시라
  혹여 세상에 대한 절망으로 분기해 있다면
  애기단풍 붉고 쪽동백 노랗게 물드는 시월
  마음 또한 노랗고 붉어지러 오시라

  그대 덕산기에 오시려거든
  폭설로 길이 끊어지는 날 흰 눈 안고 오시라
  혹여 세상의 끝을 보고 싶다면
  백석이 그러했듯이 나와 나타샤와 책 읽는 고양이가 있는
  숲속책방으로 시린 발로 오시라

  그대

-강기희 시인, ‘덕산기에 오시려거든’ 전문

‘덕산기에 오시려거든’은 덕산기 책방과 강·유 부부를 소재로 한 제 시 ‘덕산기로 가자’에 대한 시인의 답시인 셈입니다. 누구라도 덕산기에 들어 그대 힘든 삶의 자락들을 떨쳐내라 합니다. 세속의 절망이나 실패를 짊어지고 와도 좋을 곳, 어느 계절이든 덕산기에 이르게 되면 세상 따윈 범접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시집 속 시인의 시편들을 읽다 보면, 시인이 세운 유토피아에 들게 됩니다. 강기희 시인은 시 ‘통일책방 1’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시인, 소설가, 화가, 무용가, 소리꾼 할 것 없이 작은 책방에 모여 책 읽고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토요일 강기희 시인 한 명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인, 독자 60여 명이 마당에 장작불을 지피고 시를 이야기하고 술 마시고 노래하며 그의 건강을 기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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