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교육연구소장 한기택
                                              코리아교육연구소장 한기택

우리들이 즐기고 있는 화투(花鬪)는 일본에서 건너온 놀이라는 것은 대부분 잘 알고 있다.

‘무엇 때문에 일본화투냐?’고 물으면 ‘사쿠라가 일본 국화(國花)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위키백과를 보면 ‘일본은 국화(國花)가 따로 없으며 국화(菊花)는 황실을 상징한다.’라고 분명하게 나와 있다.

화투가 언제 무엇하려고 한국에 들어왔나?
화투가 조선땅에 들어온 시기를 보면 1800년 말경과 일제강점기 때에 의도적으로 전파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전파방법도 부산과 일본을 오가는 선원들에 의해서 서서히 전파됐다는 설이 있으나, 화투는 일제 강점기 때에 식민지정책, 황민화정책, 국민정신해이정책을 펼치기 위해 화투국(花鬪局)까지 설치하면서 의도적으로 강력하게 보급하였다.

한국사람 놀이 1번 고스톱,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색화투 100년, 한국 놀이 1번으로 전국 산하와 안방을 누리고 있는 일본화투를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뜻에서 오늘은 화투 이야기 중 국진 화투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본다.

화투 놀이를 할 때 손에 들어오기를 좋아하는 화투가 국진 10끗과 오동 쌍피와 비피와 오광이다.

왜 국진 10끗 화투를 좋아하게 만들었을까?

국진 10끗 화투는 빠이, 대포, 동신당, 쌍피로 피가 3장으로 그 인기가 대단하며, 화투 놀이할 때에 거의 왕권(王權), 황권(皇權-황제의 권한?)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막강한 권한을 주었을까?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화투를 만들면서, 우리들이 화투 놀이할 때에 손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게 만들었을까?

국진 10끗 화투를 좋아하게 만든 한 줄의 이유

요약해서 한 줄로 써보면 위에서 『국화가 일본 황실의 상징 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국화꽃(菊花)의 위력이 대단하다.

일본 천황의 위력

일본 천황의 존재는 일본국 헌법 제1조에 명시하고 있다. 『천황은 일본의 상징이자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이 존재하는 일본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라고 천황의 위력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일본에서의 국화꽃의 변신

국화(菊花)는 일본 황실의 꽃으로, 황실의 꽃인 국화를 국화문장(일본어:菊花紋章-기쿠카몬쇼) 또는 십육변팔중표국문(十六弁八重表菊紋)으로 만들어서 일본 황실의 문장(紋章)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국장은 아니지만, 국제관습법상 일본의 나라 문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데 우리는 유의해 보아야 하며, 일본 황실의 황실기도 자주색 바탕에 황금색의 국화문장을 넣어서 만들어 졌다.

국화문장의 정착

13세기 초 가마쿠라 시대의 고토바 상황(後鳥羽上皇)이 국화를 좋아해 자신을 나타내는 징표로 십육엽팔중표국문을 사용했으며, 그 이후 고후카쿠사 천황(後深草天皇), 가메야마 천황(亀山天皇), 고우다 천황(後宇多天皇)이 이를 자신들의 징표로 계속 사용해 황실의 문장으로 정착되었다.

공식적으로 일본 황실의 문장이 된 것은 1869년 (메이지 천황(明治天皇) 2년)의 태정관포령에 의해서이다.

국화문장의 사용

현재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는 욱일기(旭日旗) 또한 흰 바탕에 빨간색 동그라미(일장기)가 가운데 그려져 있고 사방으로 붉은 줄 열여섯 개가 빛살처럼 퍼져 나가고 있는데 이것은 해가 뜨는 모양을 그린 것이 아니라 열여섯 장의 꽃잎을 가진 국화문장인 십육변팔중표국문(十六弁八重表菊紋)을 그린 것이다.

일본 황실의 상징인 국화 문장은 일본의 일등공로 훈장도 국화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본 여권, 일본 경찰 및 구 일본군의 상징 역시 국화문장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일본 해군의 야마토 전함(戰艦大和) 등 순양함급 이상 주력함 뱃머리에 국화문장을 사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본 소총에까지 국화문장이 들어가 있다.

이쯤 되면 국진 10끗의 위력을 아시겠지요.

이쯤 되면 일본이 왜 욱일기를 고집하면서 사용하고, 왜 화투를 칠 때 국진 10끗이 거의 왕권(王權), 황권(皇權-황제의 권한?)을 가졌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을 것으로 본다.

국진 10끗의 또 이야기

국진 10끗에 있는 목숨 수(壽)의 본뜻은 높은 곳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며 무병장수를 기원했던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이나, 일본 사람들의 정서와 정신으로 보아서 ‘일본 왕가를 좋아하게 하고 '왕가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무서운 뜻이 숨어있지 않나 하고 해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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