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주/갤러리봄 관장
백영주/갤러리봄 관장

스핑크스는 흔히 두 가지 이미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첫 번째는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지키고 있는 거대한 석재 조각, 두 번째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수수께끼를 내고 정답을 맞히지 못한 자들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BC 2650년경에 지어진 스핑크스가 현존하는 제일 오래된 조각인데, 피라미드의 주인인 왕의 얼굴을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 바다를 건너 넘어간 그리스 등지에서 신들의 딸이자 수수께끼를 내는 괴물로 변주된 것이다. 오랜 세월 성별에 관계없이 신 또는 괴수로 여겨지던 스핑크스였지만, 19세기에 이르러 모험가들을 잡아먹기 위해 유혹까지 서슴지 않는 팜므파탈로 변모한다.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에 의해 문학을 시작으로 미술,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팜므파탈들에는 스핑크스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 한정이지만 상체는 여성이고, 수수께끼를 맞추지 못하는 인간을 잡아먹는 등 사람을 해치는 존재라는 이유로 편입된 듯싶다.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1864), 구스타프 모로

스핑크스를 치명적인 팜므파탈로 묘사한 화가들 중 현대인들에게도 가장 잘 알려진 화가는 모로다. 신화 속의 장면을 환상적인 화풍으로 그려내기로 유명한 그답게, 오이디푸스 신화도 그림으로 남겨 놓았다.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에서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푸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목숨이 달린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보내는 눈빛에는 유혹이 서려 있다. 예쁘게 정돈한 머리에 곱상한 얼굴을 지녔지만, 맹수의 앞발은 오이디푸스의 가슴 앞에서 언제든 바로 심장을 공격할 준비를 마친 상태다. 유혹적인 눈빛은 희생양에 혼동을 주기 위한 장치일 뿐임을 그림 하단의 시체 잔해가 알려주고 있다. 이를 진작에 간파한 듯 스핑크스를 마주하는 오이디푸스의 시선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스핑크스를 팜므파탈로 변모시킨 사례들 중 가장 강렬한 작품을 꼽는다면, 프란츠 폰 슈투크의 <스핑크스의 키스>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슈투크는 모로의 위 작품이 탄생하기 1년 전인 1863년 독일에서 태어나 회화를 넘어 조각, 공예, 건축 등 다양한 방면에서 예술성을 발휘한 작가다. 회화에서는 색채의 과감한 사용, 식물의 꽃과 잎에서 보이는 생동감을 곡선 형태로 나타낸 유겐트슈틸 풍의 묘사, 대담한 구도로 그리스·로마 신화 속 이야기를 재해석하였다. 그림 속 스핑크스는 남자에게 격정적인 키스를 퍼붓고 있다. 남자는 무릎을 꿇은 채 스핑크스의 유혹 속에서 허우적대기 바쁘다. 오이디푸스와 달리 그는 바닥에 나뒹구는 시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스핑크스의 키스(1895), 프란츠 폰 슈투크
스핑크스의 키스(1895), 프란츠 폰 슈투크

 

작은 수호신 스핑크스(1943~1944), 레오노르 피니
작은 수호신 스핑크스(1943~1944), 레오노르 피니

신들의 자식으로, 인간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스핑크스의 위엄을 그림 속에서 되살린 화가는 20세기에 태어난 화가 레오노르 피니다. 그는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주로 어울렸지만, 그들의 남성 중심적 사고에 반발하면서 일방적인 시선으로 여성을 뮤즈로 숭배하는 행태를 비판하였다. 이에 반하듯 무섭지만, 관대하기도 한 초월적인 여성 이미지를 주로 구현해 냈다. 40년대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얼굴을 닮은, 반인반수의 여성을 테마로 한 작품들을 자주 선보이는데 이는 스핑크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지난 세기 동안 팜므 파탈로 소비되던 모습 대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위엄을 유지하며 남성과 여성을 모두 아우르는 양가적인 존재로 탈바꿈시켰다. <작은 수호신 스핑크스>(1943~1944)에서는 희생양을 죽음으로 이끄는 유혹적인 모습 대신, 강력한 모습이 두드러진다. 홀로 높은 제단 위에 앉아 이집트 여신의 제의 때 사용했던 시스트럼과 함께 추앙받는 신적 존재로서의 존재감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다. 19세기에 남성 화가들에 의해 잃어버렸던 신적 자아를, 20세기가 되어서야 여성 화가에 의해 되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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