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섭/주필
  임명섭/주필

토마스 슈테펜 독일 연방보건부 차관은 “독일에서는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독일 ‘공적의료보험 의료지원단’(MD) 에른스트 사이페르트 박사도 "의사 수를 늘리는데 의사들이 반대하지 않았다" 답했다. 

우리나라와는 달랐다. 의사 단체의 반대로 2006년 이후 18년째 의대 정원을 3058명에서 단 한 명도 늘리지 못하고 있다. 특정 직군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 가는 독일의 의료 정책이 부러울 정도다.

2020년 문재인 정부도 의대정원 증원을 추진했을 때 의대 정원 확대 국민 찬성 여론이 58.2%로 다수였지만 의료계가 진료 거부를 하며 극렬하게 반발하자 백기를 들고 물러섰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여론보다 의사 단체의 입김이 세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과거와 달리 의대 정원을 늘릴 명분도, 근거도 충분히 쌓였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찾아 뺑뺑이를 돌다가 환자가 생명을 잃는 등 재난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공감대도 크다. 게다가 소아과는 전문의 부족으로 부모들이 아침마다 병원 앞에서 줄을 서는 ‘소아과 오픈런’이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또 지방 의료원에서는 연봉 4억 원에도 의사를 구하기가 힘든 실정이다. 이런 환경에서 의사들이 실력 행사에 나서고 정부가 백기 투항한다면 의료 난맥상을 해결할 골든타임을 영영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가운데 윤성열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정원 1000명을 늘리는 방안을 발표해 또 떠들썩하다. 

하지만 장기간 표류해온 의료개혁의 첫 물꼬가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당장 의료계의 반발이 우려되고는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의사 정원 확대라는 결정을 하면 그에 따른 반응도 또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의사 공급이 부족한 것은 국제적으로 비교한 수치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다. 2021년 기준 국내 임상의사 수는 한의사를 포함해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번째로 적다. 

한의사를 제외한다면 2.2명으로 가장 적다. 의대 졸업자가 적으니 당연한 결과다. 2020년 기준 국내 의대 졸업자는 인구 10만 명당 7.2명으로 OECD 평균 13.6명의 절반 정도다. 우리보다 인구가 1.3배인 영국의 의대 입학정원은 2.8배인 8천639명이다. 

의협의 반대 이유는 이렇다. 우선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1000명당 활동 의사의 연평균 증가율은 2010~2020년 2.84%로 OECD 평균보다 높다는 것이 협회 주장이다. 때문에 비정상적인 의료수가를 바로잡아야 하고 의료사고 등으로부터 의사를 보호할 장치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현실은 절박하고 고통스운 것은 사실이다. 의사들의 서울과 수도권 쏠림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지방에서는 '의사 찾아 삼만리'라는 웃지 못할 표현까지 등장했다. 서울은 1000명당 의사 수가 3.47명이지만 충북과 경북 등 지방 시·도 11곳은 2명도 안 된다. 

이대로 가면 지방 의료 시스템이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망가질 것이다.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때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정부와 의료계의 의무이자 도리일 것이다. 물론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외국과 비교해 의사 수가 훨씬 부족한 마당에 의대 증원을 반대할 명분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의대 정원은 얼마나 늘리느냐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늘리느냐가 더 관신이다. 의료 인력 총량을 늘려 도시에 의사가 차고 넘치고 농어촌에 의사 공급이 자연스레 늘지는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또 의사 수를 늘린다 해도 돈 벌이가 좋은 '피부과나 성형외과로 쏠릴 것’이라면 안 된다. 

비급여가 많은 피부과나 성형외과로 몰리면 의료행위도 높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어 좋으나 반면 고된 필수의료에 지원하려는 의사가 있을까? 일본은 각 의과대학에서 지역 전형으로 학생을 뽑아 일정 기간 특정 지역 근무를 조건으로 장학금을 주는 지역 의료 인력 양성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충분한 숙의가 없으면 본질은 흐려지고 정책은 실패로 돌아가기 쉽다. 정부와 정치권, 여론은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붕괴로 인한 국민 피해를 막으려면 의대 증원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에 동의하면서 추진하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의사단체보다 수요자인 국민 눈높이에서 흔들림 없이 국민 건강 차원에서 정부와 의사협회가 머리를 맞대고 의료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온당한 자세인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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