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섭 주필
임명섭 주필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의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서 할로윈 축제로 수많은 인파가 몰린 와중에 발생한 압사 사고로 인해 159명이 압사하고 196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 후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안은 압사 사고의 책임자 처벌을 위해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법안이, 2023년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인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켜 정부로 이송됐다.

국민의힘은 “특조위 구성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고, 재탕, 삼탕, 기획 조사 우려가 있다”며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에게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안의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그 후 윤 대통령은 ‘10·29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에 대해 무회의 의결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정부는 해당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결을 요구했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재의결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입장 변화 없이는 재의결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 

정부는 재의요구안 사유로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에서 구성하도록 한 특별조사위원회의 업무 범위와 권한이 과도해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고, 특조위 구성 절차에 공정성·중립성이 담보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정부는 재의요구안 의결 직후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기릴 수 있는 영구 추모 시설 건립 등 피해자 지원 대책을 내놨다. 또 피해자의 생활 안정을 위한 지원금과 의료비, 간병비 지원 등도 확대하고, 현재 진행 중인 민·형사 재판 결과가 최종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속도감 있게 배상·지원을 하기로 했다. 

정부의 피해자 지원책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유가족 지원이 이뤄진다고 해서 이태원 참사의 본질이 덮일 수는 없다. 유가족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함께 재발 방지책 마련을 요구했다.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가 일어난 지 15개월이 지났건만 철저한 진상 규명은 물론이고 윗선 문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태원 참사는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후진국형 참사다. 때문에 국민에게 커다란 충격과 아픔으로 남겠다. 여당과 정부는 민주당의 목소리를 정쟁을 위한 것으로만 보지 말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야당도 총선을 앞둔 정쟁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법안이라면 당위성을 잃을 수 있다. 참사로 인한 아픔이 정쟁의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된다. 때문에 특별법이 시행될 경우 막대한 예산과 행정력 투입에도 불구하고 국민 분열만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새겨들어야 한다. 

앞서 민주당은 세월호 참사가 빚어졌을 때 특조위를 관철시켰지만 천문학적 예산을 쓰고도 진상 규명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8년간 7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쓰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의미와 업적을 남겼는지는 아리송하다. 

‘10·29 이태원 참사'는 엄청난 국민 부담에도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진정한 위로와 보상이 뒷전으로 밀리는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민심이 여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 “사람이 159명이나 죽었는데 왜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냐”는 상식적 여론이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서울경찰청장·용산경찰서장·구청장 등 23명은 관리 책임을 물어 사법 절차를 밟고 있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회의 탄핵소추까지 받았으나 헌법재판소로부터 전원 일치 기각 판단을 받기도 했다. 

민주당 주도로 벌인 55일간의 국정조사조차 새로운 내용을 밝혀내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도 8년 동안 진행된 아홉 차례의 국정조사, 특조위 조사, 특검 수사 등이 사회적 갈등만 키웠을 뿐 뚜렷한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도 교훈이 됐다. 

이태원 특별법이 자칫 국가적 에너지만 소모하고 국민 분열과 불신을 증폭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은 특별법의 재의결 시점을 저울질하면서 정치적 득실 따지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야당이 진정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독소 조항을 없애는 방향으로 재협상에 나서 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처리되기를 기대한다. 

정부도 피해 보상 등 유가족 지원을 위한 후속 조치를 서둘러 실행에 옮겨야 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참사를 둘러싼 정치 공방이 아니라 이제는 재난 정쟁화에서 벗어나 사회 전반의 안전 시스템을 점검하는 데도 주력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부와 여야는 무엇이 유가족과 희생자의 상처 치유에 실효적인 도움이 되는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게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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