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섭/주필
  임명섭/주필

범죄 피의자에 대한 구속 수사여부의 법적 판단은 판사의 소신에 따른 것이나 그 무게는 종종 시대적 흐름을 좌우할 만큼 무겁다. 헌법 제27조에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 무죄 추정원칙에서 비롯된 것이 불구속수사 재판의 원칙이다. 때문에 신체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헌법정신 그 중에서도 무죄 추정원칙으로 인하여 불구속 수사, 불구속 재판을 원칙적으로 하고 인신의 구속은 신체의 자유에 대한 제약임에 비추어 최소한에 그쳐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

최근 정치권에 가장 뜨거운 이슈는 누가 뭐래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장재판 결과다. 지금까지 관련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영장 청구의 대상이 현 야당 대표이기도 하고 체포동의안도 국회에서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터라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이 범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영장이 기각 됐다고 마치 면죄부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잘못이다. 영장 기각은 사실상 현재의 ‘무죄 판결’과는 상관없다.

그래서 법원의 영장 기각은 다르다. 유무죄 아닌 구속의 적절성 여부만 따진 것이다. 즉 피의자의 범죄 혐의가 사라진 게 아니라 재판 때까지 미뤄진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영장 기각 이후 ‘완전 무죄가 된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결정문은 이 대표의 혐의 중 위증 교사에 대해선 ‘소명됐다’고 결론 내렸고 백현동 특혜 의혹에 대해서도 ‘상당한 의심이 든다’고 했다. 형사소송법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상당한’ 의심이 있을 경우 소명이 됐다고 보고, 영장 발부 사유로 판단한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그러나 바꿔쓰면 ‘직접 증거는 부족할 수 있으나 상당한 의심이 듦으로 영장을 발부한다’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형사소송법상 수사는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고 예외적으로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피의자가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나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또는 피의자가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등 구속 사유가 있는 때’에 한해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다.

즉, 영장심사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지와 구속 사유가 있는지를 심사하는 절차일 뿐 유·무죄 판단을 하는 절차는 아니다. 영장이 기각됐다고 해서 판사가 해당 피의자에게 무죄라는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피의자가 유죄라는 의심이 든다고 하더라도 구속 사유가 없으면 영장은 발부될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구속이란 수사기관이 영장에 기재된 피의자의 혐의를 수사하고 기소 이후 재판에 출석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지 피의자에게 구속 수감이라는 불이익을 부과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다.

영장심사 과정에서 기각 사유에 ‘일부 혐의는 소명됐다’ ‘일부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등의 표현이 등장하지만 혐의가 소명됐다고 해서 유죄라는 뜻이거나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해서 무죄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정부 여당을 상대로 강공 드라이브를 걸기도 했다. 마치 이 대표가 무죄판결이라도 받은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정치 공세를 벌이는 것은 착각이다

구속 영장이 기각됐다고 안심하기 힘든 이유는 많다. 영장이 기각되고도 유죄가 선고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구속영장이 두 번이나 기각됐는데도 성범죄 혐의가 확정돼 꼬박 3년 6개월 징역을 살아야 했다.

또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 직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도 영장이 기각됐지만 실형을 면치 못했다. 친문 핵심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영장 기각 뒤 댓글 공작 공모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영장이 기각됐지만 1심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됐다. 구속 영장의 기각이 최종 판단은 아니다. 마지막 진실은 재판 과정을 통해 모습을 드러 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장이 기각인지 발부인지와 무관하게 영장심사는 흔히 말하는 ‘법의 심판’과는 무관하다. 

구속영장심사는 수사 단계에서 구속 사유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따라서 영장 기각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피의자는 검찰이 기소 후 공판 단계에서 객관적인 증거로 입증하면 된다. 

재판의 본질이 아닌 영장 기각을 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영장기각을 환호했다. 이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피의자 등의 운명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의자가 수많은 범죄 혐의 중 단 하나에라도 유죄 판결이 선고되면 모든 게 치명상을 입게 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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