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철/법강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박현철/법강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소방관이라며 본인을 소개하는 그이는 군인의 모습이었다. 상담 내 꼿꼿이 세운 허리와 고개는 그가 평소 얼마나 올곧은 기개로 삶을 살아내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이 건물 임대인은 전세사기 사건으로 현재 수사 중에 있으며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변호사의 절망 선고 앞에서도 그이의 얼굴에는 감정 변화가 일지 않았다. 

그러나 상담실 책상 아래로 잡고 있던 그이의 손 온도와 떨림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축축해진 손바닥, 가늘게 이어진 떨림이 아내의 손에 공명하자 어느 순간 아내는 쉴 새 없이 눈물을 닦아냈다.

작년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의 아이는 올해 말 이 좋은 세상의 빛을 본다고 한다. 그러나 대출로 마련한 1억5000만 원 전셋집에서 출발한 이들 부부에게 오늘은 잿빛 하늘의 날카로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힘없이 일어나 나가는 소방관님께. 늘 감사드린다는 말씀 외에 필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이는 내일부터 다시 화재 현장에 나갈 것이고 시민들을 위해 화마(火魔)와의 다툼을 계속할 것이다. 다만 표정없는 그이의 마음속 불같이 오르는 분노는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말인가.

작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터진 대전 전세사기로 참 많은 분들을 만났다. 전민동, 문지동, 가양동, 비래동, 홍도동, 용문동, 봉명동 등 다가구주택 비율이 높은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대전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세사기 피해자는 총 1400여 명, 그 피해액만도 1500억에 이른다고 한다. 2023년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1965억, 2022년은 1451억 원이다. 전국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한 해 동안 대전에서만 발생한 것이다.

2024년이 시작되며 필자는 이제 끝이 나겠구나 했다. 터질 지역은 다 터졌고 구속될 인원들은 전부 구속 수사 중에 있으니 큰 틀에서 해결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매일 찾아오던 신혼부부, 사회 초년생들의 흐르는 눈물에 가벼운 티슈 몇 장 성급히 뽑아주며 의미없는 위로를 할 일이 점점 줄어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3월부터 다시 시작된 상담 대부분이 새로운 임대인들 소유의 건물들이다. 마치 작년 3월의 데자뷔가 시작되는 것 같다.

학하동, 도마동, 대흥동, 대사동에 위치한 건물 수십 채를 보유 중인 이들 일당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무자본 갭투자의 오류에 빠져 결국 임차 기간 종료 이후 평균 1억에서 많게는 2억 사이의 보증금 반환을 하지 못하고 있고 대부분의 건물들이 줄줄이 경매개시가 결정된 상태이다.

문득 대전에 도대체 몇 개의 다가구 주택이 있기에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대전시에 따르면 작년 기준 대전 다가구 주택은 약 3만 동 정도 된다고 한다. 대전시 전체 주거용 건축물의 약 33% 정도라고 하는데, 서울 25%, 부산 14%라는 수치에 비하면 상당한 비율이다.

이쯤되면 절망적인 현실을 시 차원에서 조금 더 엄중하게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질적으로 대전 내 다수의 다가구주택을 보유한 임대인들의 현 상태를 사전에 점검하고 은행 측의 임의경매에 이르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경험 상 전세보증금 반환 불가 사태가 벌어지고 결국 경매에까지 이르는 다가구주택의 스토리는 비슷하다.

① 건물 보존등기가 17년 내지 22년이다. ② 등기부 상 건물 보존등기가 된 날 금융권에서 선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된다. ③ 선순위 근저당권의 채권 최고액이 건물 공시지가와 유사하다. ④한 임대인 내지 그 가족들이 적게는 5~6동에서 많게는 수십 동의 건물을 보유 중이다. ⑤ 전입세대 확인서 및 확정일자 부여 현황 확인을 해 보면 대부분 전세로 건물을 임대한 상태여서 선순위 근저당 권부 채무의 이자 부담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걱정된다.

딸아이는 요즘 “빠방”에 빠져있다. 마트에서 5000원 정도 하는 만화영화 등장 차량들인데 그중 소방차, 경찰차 그리고 버스를 유난히 좋아한다. 특히 소방차를 가리키며 늘 삐뽀 삐뽀 소리를 흉내 내는데, 아마도 아빠와 함께 드라이브를 나갔을 때 정신없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소방차가 인상 깊었나 보다. 삐뽀 삐뽀 소리를 내며 차를 가지고 노는 아이를 보며 늘 웃음을 지었었다. 그러나 얼마 전 소방관과 그의 아내 그리고 뱃속의 아이가 찾아간 뒤 필자는 딸아이가 가지고 노는 소방차를 보며 웃음을 짓지 못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충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