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수 편집국장 직무대행

‘아기돼지 삼형제’라는 영국 전래동화가 있다. 가난한 엄마돼지는 ‘운’(fortune)을 찾으라고 세 마리 아기돼지를 세상에 내보낸다. 엄마 품을 떠난 아기돼지 삼형제는 각각 다른 재료를 구해자신의 집을 짓는다. 첫째는 지푸라기로, 둘째는 나무로, 셋째는 벽돌로 집을 짓는다. 이 때 늑대가 등장한다. 늑대는 아기돼지 삼형제를 잡아먹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할리웰이나 제이콥스 판은 잔혹동화에 가깝지만 디즈니 판 이후로는 늑대가 막내 돼지의 용기와 지혜에 골탕을 먹고 멀리 도망간 후 삼형제는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시즌1. 이 전래동화에서 늑대의 목표는 아기돼지 삼형제다.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번에는 후배의 카톡 프로필 사진 이야기. ‘프사’는 네 컷 만화다. 아기돼지 삼형제가 지푸라기, 나무, 벽돌로 각자의 집을 짓는다. 그 모습을 본 늑대가 말한다. “젊은 나이에 자기집을 장만하다니... 부럽다” #시즌2. 여기서 늑대의 목표는 아기돼지 삼형제가 아니다. ‘집’이다.

이제 우리 대부분은 먹고는 산다. 전세계에 굶어죽는 인구가 얼만데 그런 배부른 소리를 하냐고? 지난 시절과 비교했을 때 통계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대부분은 ‘食’을 목표로 살지는 않는다. 우리의 목표는 ‘住’로 이동했다. 강남에 사는 지, 강북에 사는 지, 아파트에 사는 지, 빌라에 사는 지로 한 사람을 ‘계량’한다. 누구는 삼성에 살고, 누구는 현대에 산다.

후배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20대 후반의 청년이다. 동갑내기 여자친구와의 결혼 소식을 전할 때 후배는 행복해 보였다. 여자친구와 둘이 알뜰살뜰 모아둔 종잣돈이 있다며, 대출을 얼마간 받으면 작은 아파트를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할 때 후배의 어깨가 한 뼘은 올라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후배의 달뜬 설렘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아파트가 그렇게 비싼 줄 몰랐어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아 후배는 결국 아파트를 포기했다. 전세도 구할 수 없었다고 했다. 아파트가 이렇게 많은 데 내 아파트는 없었다고. 아파트를 포기한 후부터 후배의 프사는 아기돼지 삼형제다. 시즌2 ‘아기돼지 삼형제 부동산 성공기’

각종 고강도 규제에도 대전 집값이 상승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8월 아파트값 상승률은 0.94%로 전국에서 세종을 제외하고 두 번째로 높다. 정부는 최근 부동산값 폭등과 관련해 “8월 말, 9월초가 되면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고 자신 있게 예언했다. 하지만 집값이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네이버 부동산에 따르면 대전 서구 둔산동 녹원아파트는 76㎡ 기준 지난달 3억4700만원으로 지난 7월(3억1500만원) 대비 3000만원 이상 오른 가격으로 거래됐다. 유성구 원신흥동 어울림하트아파트는 101A타입 기준 지난달 5억1800만원으로 지난 6월(4억5500만원) 대비 6000만원 이상, 서구 도안동 아이파크 역시 115A㎡ 기준 지난달 6억8000만원으로 지난 7월(6억2500만원) 대비 6000만원 이상 상승한 가격으로 거래됐다.

한 달 새 6000만원이라니. 집 없는 서민에게 ‘내집 장만’은 점점 꿈이 되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신기루’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잡으려고 할수록, 더 잡히지 않는다.

이 엄중한 시국에,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대전 도안지구 개발사업 인허가 비리 의혹을 수사한 검찰이 대전시 공무원을 포함해 9명을 기소했다. 대전시 도시재생주택본부 소속 공무원 A씨는 도안 2지구 개발사업과 관련한 정보를 사업 인허가 대행업체 측에 넘기고 대행업자 B씨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들이 부동산 개발 정보를 대가로 금품과 향응을 거래하고 있을 때, 수많은 이 땅의 서민들은 일터에서 땀 흘려 번 돈을 저축하며 언젠가 내집이 생기기를 소망하며 살아간다.

나는 소망한다. 우리의 노동이 배신당하지 않기를. 근면하게 일하고, 성실하게 저축하면 내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계획’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기를. 건강한 계획이, 건강한 현실을 만드는 사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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