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숙/국제한류학회 이사

옥천은 정지용이 남긴 유산의 고장이다. 정지용의 문학은 지역 정체성을 지켜온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생가·문학관·문학제가 지역 공동체와 어우러질 때 경제적 기반이 된다. 이는 문화관광산업으로 확장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며, 지역경제활성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지역 정체성과 문화관광산업의 기반이 되는 문화적 자산이다.

문학은 한 개인의 삶을 기록하는 동시에, 
시대와 사회의 정서를 간직한 기억유산이다

정지용 생가.
정지용 생가.

충북 옥천은 정지용의 고향이다. 이곳이 문화유산의 장소로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그의 생가와 문학관, 그리고 해마다 열리는 ‘지용제’는 문학이 지역과 만나는 방식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 정지용이 남긴 시는 지역 사람들의 정체성과 감각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 본편은 옥천이 어떤 방식으로 정지용이 물려준 기억유산을 문화유산으로 계승해왔는지 살펴보고, 지금 이 시대에 유산을 어떻게 보존에서 향유하는 문화로 확장하여, 지역문화자산으로 견인할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다.

정지용문학관 앞에 있는 정지용 동상.
정지용문학관 앞에 있는 정지용 동상.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의 의미 
옥천읍 교동리에 위치한 정지용 생가는 1902년 정지용이 태어난 실제 고택을 바탕으로 복원된 공간이다. 충청도 전통 가옥 양식을 따른 이 생가는 그 자체로 역사적 상징성을 지니며, 시인의 유년 시절이 녹아 있는 장소다. 초가지붕과 마루, 흙담장 사이로 바라보는 고요한 마당은 그의 시 세계를 구성한 정서의 원형이자, 문학이 시작된 물리적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생가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정지용이라는 시인을 지역사회와 역사적으로 연결해주는 ‘살아 있는 문학 공간’이다.

생가 인근에는 2002년 개관한 정지용 문학관이 있다. 이곳은 정지용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소개하는 전시실을 중심으로, 다양한 체험형 콘텐츠를 갖춘 복합 문화공간으로 조성돼 있다. 시인의 자필 원고, 육필 편지, 육성 녹음 자료 등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시인의 존재를 생생히 느끼게 하며, 문학이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님을 일깨운다. 특히 주요 시 작품들이 시청각적으로 구현되어 있어 관람자가 직접 시의 감각을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점이 주목된다.

정지용문학관 내부 모습.
정지용문학관 내부 모습.

문학관은 교육적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지역 학생들과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시 창작 교실, 낭독회, 토론 프로그램은 문학의 대중화뿐 아니라 지역민의 문화 향유권 확대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는 정지용이라는 개인의 유산이 공동체 문화로 확장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또한 문학관은 전시와 옥천이라는 지역의 정체성을 외부에 알리는 문화기반시설로 자리잡고 있다.

건축적 측면에서도 문학관은 정지용 시 세계의 미학을 반영하고 있다. 유려한 곡선의 외관, 내부의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전시동선, 정원에 흐르는 시 구절들은 방문자가 시인의 언어 안을 걷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문학관이 정보 전달의 장소가 아닌, 문학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음을 보여준다.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은 옥천이 한국 현대시의 원형을 간직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핵심 거점이다. 이들은 유산이 박제된 기념물이 아닌, 지역민과 방문객이 함께 호흡하는 문화자산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정지용 유산의 힘이며, 옥천이라는 지역이 지닌 문화적 가능성의 뿌리다.

2025년 지용제 일정.
2025년 지용제 일정.

▲지용제 의미와 미래비전
‘지용제’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89년, 옥천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문인들의 자발적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매년 5월 정지용의 탄생일에 맞춰 열리는 이 행사는 이제 옥천의 대표적 문화축제로 자리 잡았다. 단순한 기념행사가 아닌, 지역 전체가 함께 참여하는 ‘문학축제’로서의 정체성을 꾸준히 이어온 것이다.

‘지용제’의 주요 행사는 시 낭송회, 백일장, 문학강연, 연극 공연, 정지용 거리 투어 등으로 구성된다. 시 낭송회에는 전국 각지의 낭송가와 학생들이 참여해 정지용의 시를 소리로 되살리고, 백일장과 문학 강연은 문학에 대한 관심을 교육과 창작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연극과 공연은 시를 공동체 문화로 확장시키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지용제에서 펼쳐진 공연 모습.
지용제에서 펼쳐진 공연 모습.

‘지용제’는 외형적으로도 성장을 거듭해왔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지역 문인 중심의 소규모 행사였던 것이, 2000년대 이후에는 전국 규모로 확대되며 방문객 수도 점차 증가했다. 2024년기준 3일간  약 6만명의 방문객이 축제장을 찾았으며 1일 평균 방문객 수는 약 2만명이다. 이 중 상당수가 문학 애호가이거나 교육기관 단위로 방문한 청소년들이다. 이는 ‘지용제’가 지역행사에서 전국적인 문학문화 행사로 확장해 가고 있다는 의미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지용제’의 프로그램 중 상당수가 반복적인 구성에 머물고 있어 축제의 창의성과 확장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이 절실하며, 지역 외 문학인이나 예술가와의 협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개선 과제로 지목된다. 또한 운영 주체가 지자체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어, 지역 주민과 예술인 주도의 자율적 운영 모델 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용제’가 보여주는 가장 큰 가능성은 ‘문학의 지역화’이다. 문학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적 자긍심을 일깨우는 과정이 바로 정지용제가 지닌 문화적 힘이다. 시인의 유산을 기념하거나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공동체가 공유하고 일상에서 향유하는 문화로 활용시킨것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문화도시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유산을 활용한 축제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용제에서 한 참가자가 정지용 시인의 모습을 하고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지용제에서 한 참가자가 정지용 시인의 모습을 하고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옥천이 지닌 문화유산의 확장 가능성 
정지용의 유산은 생가와 문학관, 축제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더 확장될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이다. 특히 ‘문학관광’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면, 옥천은 한국 근대문학의 중요한 순례지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이미 일부 학교 단체와 문학 동호회들이 옥천을 문학기행의 목적지로 삼고 있으며, 정지용의 시가 담긴 공간을 따라 걷는 ‘정지용 문학길’도 의미 있는 반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자원을 더욱 체계화하기 위해선 콘텐츠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시 낭독 앱, 문학 테마 지도, 지역 예술가와의 협업 프로그램 등 디지털 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세대 간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정지용의 시 세계를 해석한 연극, 미술, 영상 콘텐츠를 지역 기반으로 제작하고 순환시킨다면, 옥천은 ‘문학이 살아 있는 지역’이라는 브랜드를 확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과 예술인이 중심이 되는 운영 구조다. 문학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문화다. 지역민의 참여와 자긍심이 살아 있어야 문화유산도 지속가능하다. 옥천은 그 가능성을 이미 갖추고 있다. 이제는 그 가치를 지역 경제, 교육, 관광과 연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문화유산은 지역경제의 자산
정지용은 옥천에서 문학이라는 장르를 통해 기억유산을 남겼고, 옥천은 정지용을 통해 문화예술의 뿌리를 지켜왔다. 그의 흔적이 담긴 생가와 문학관, ‘지용제’는 지역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문화유산이다. 유산을 어떻게 보존에서 향유하는 문화로 확장할 것인지가 옥천 앞에 놓인 과제다. 문화예술은 여전히,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자산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충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