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계의 자산과 소득 규모이 증가한 가운데 부채와 분배 지표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제공=국가데이터처)
국내 가계의 자산과 소득 규모이 증가한 가운데 부채와 분배 지표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제공=국가데이터처)

[충남일보 이승우 기자] 국내 가계의 자산과 소득 규모는 불어났지만 부채와 분배 지표가 동시에 악화하며 체감 생활 여력은 오히려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데이터처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과 함께 4일 공동 발표한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가구당 평균 자산은 5억6678만 원으로 전년 대비 4.9% 늘었다.

같은 기간 평균 부채는 9534만 원으로 4.4% 증가했고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은 4억7144만 원으로 5.0% 확대됐다. 지난해 가구 평균 소득은 7427만 원으로 3.4% 증가했다.

자산 증가는 여전히 부동산 중심 구조가 이끌었다. 전체 자산 중 실물자산은 75.8%인 4억2988만 원으로 집계됐고 금융자산은 24.2%인 1억3690만 원에 그쳤다.

실물자산 증가율은 5%대를 기록한 반면 금융자산 증가율은 2%대에 머물렀다.

가구주 연령대별로는 50대와 40대, 종사자 지위별로는 자영업자 가구의 자산 규모와 증가 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여유자금 운용에서는 예금 등 안전자산 선호가 두드러지며 자산 포트폴리오 재편도 방어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 분포를 보면 양극화 흐름이 뚜렷하다. 전체 가구의 57%는 순자산 3억 원 미만에 머무는 반면 10억 원 이상 자산가 가구 비중은 11.8%로 나타났다.

순자산 상위 10%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46.1%까지 올라갔고 순자산 지니계수는 0.62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평등,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뜻으로, 이번 수치 상승은 자산 격차 확대를 의미한다.

부채도 늘었지만 증가 부담은 특정 계층에 몰리고 있다. 가구 평균 부채 9534만 원 가운데 금융부채는 6795만 원(71.3%), 임대보증금은 2739만 원(28.7%)으로 구성됐다.

전년과 비교하면 금융부채는 2%대 증가에 그쳤으나 임대보증금은 10% 안팎으로 뛰어 전·월세 자금 부담이 커졌음을 보여줬다. 부채를 보유한 가구만 놓고 보면 평균 부채는 1억6181만 원으로 1년 새 7.6% 늘었다.

연령과 직업에 따라 부채 부담 차이는 더 크다. 40대 가구의 평균 부채는 1억4325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증가율도 전체 평균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으로 집계됐다.

종사자 지위별로는 자영업자 가구 평균 부채가 1억2479만 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득 3분위와 5분위 가구에서도 부채 확대가 두드러져 중·상위 계층 일부가 레버리지를 통해 자산을 늘리는 구조가 강화된 모습이다.

이런 경향은 40대와 자영업자가 주택 구입과 자녀 교육 등 필수지출이 많은 연령·직군인 데다 경기·금리 변화에 민감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는 경기 둔화나 금리 재상승 시 이들 계층에 충격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

소득 수준은 전반적으로 개선됐지만 분배는 악화했다. 지난해 가구 평균 소득 7427만 원 가운데 근로소득은 4747만 원(63.9%), 사업소득은 1299만 원(17.5%), 공적이전소득은 660만 원(8.9%)을 차지했다.

모든 분위에서 소득이 증가했지만 소득 상위 20%인 5분위의 증가율이 4.4%로 가장 높았다. 1분위는 3.1%, 2분위 2.1%, 3분위 1.8%, 4분위 2.8%에 그치면서 상위 계층이 평균 소득 상승을 견인하는 구조가 뚜렷해졌다.

이를 반영하듯 대표적인 분배지표들이 일제히 나빠졌다. 작년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0.325로 전년보다 0.002p 상승했고 소득 5분위 배율은 5.78배로 0.06p 확대됐다.

균등화 시장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0.399로 0.007 상승했고 상대적 빈곤율은 15.3%로 전년 대비 0.4p 높아졌다. 상위 20%의 소득 평균이 하위 20%보다 5.78배 많다는 뜻으로, 소득 격차가 다시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정부의 재분배 정책 효과와 노년층 분배 지표는 일부 개선됐다.

시장소득 기준 상대적 빈곤율과 처분가능소득 기준 상대적 빈곤율의 차이는 5.6p로 늘어 정부 이전소득과 조세·사회보험을 통한 재분배 효과가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66세 이상 은퇴 연령층의 처분가능소득 기준 상대적 빈곤율은 37.7%로 2.1p 낮아져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이는 국민연금과 노령연금 수급자가 늘어난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됐다.

가계가 실제로 쓸 수 있는 여윳돈은 지표상 개선 폭이 더 작았다. 지난해 가구 평균 비소비지출은 1396만 원으로 5.7% 증가해 소득 증가율을 웃돌았다.

세금은 472만 원으로 9.7% 늘며 가장 큰 폭을 기록했고 공적연금·사회보험료는 448만 원, 이자비용은 271만 원으로 각각 1.8%, 4.4% 증가했다.

가구 간 이전지출은 158만 원으로 8.8% 늘었다. 비소비지출 구성비는 세금이 33.8%, 공적연금·사회보험료가 32.1%, 이자비용이 19.4%를 차지했다.

그 결과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6032만 원으로 2.9% 증가하는 데 그쳐 명목 소득 증가만큼 소비 여력이 넉넉해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 결과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자산 효과’만을 볼 것이 아니라 부채와 지출 구조, 분배 악화까지 함께 읽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제계 한 전문가는 “1주택자의 경우 집값이 올라도 실제로 당장 활용 가능한 자산 증가는 제한적”이라며 “자산 규모 확대와 함께 부채와 필수지출이 얼마만큼 늘었는지를 동시에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영업자와 일용직 근로자처럼 소득 변동성이 큰 계층이 빚을 내 생계를 유지하는 상황은 경기 부진 신호로도 해석될 수 있다”며 “평균 지표보다 취약계층 중심의 맞춤형 지원과 부채 관리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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