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일보 이승우 기자] 한 번의 좌절이 평생의 상처가 되지 않도록 일터의 문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전·세종·충남·충북 전역을 돌며 장애인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대전장애인근로자지원센터 박찬권 센터장도 그중 한 사람이다. 34년간 공직에서 장애인 복지 현장을 지켜온 그는 이제 공직이 아닌 곳에서, 제도의 틈새를 채우는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의 ‘퇴근 후 눈물’을 ‘내일의 출근 미소’로 바꾸기 위해 매일 발걸음을 내딛는 박찬권 센터장. 충남일보가 박 센터장을 만나 센터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박찬권 대전장애인근로자지원센터장은 올해 4월, 34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2대 센터장으로 부임했다.
대전시에서 오랜 기간 장애인 복지 업무를 담당해온 그는 “이번 부임은 제게 마음의 빚을 갚을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현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대전·세종·충남·충북 4개 지역을 관할하는 대전센터는 정규직 3명, 변호사·노무사·수어통역사 등 촉탁직 3명으로 구성돼 있다.
관할이 넓고 인력이 적지만 박 센터장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어디든 직접 간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그는 “장애인 근로자는 일터에서 한 번 좌절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상담 장소가 150km 이상 떨어져 있어도 마다하지 않는다”며 “상담은 책상에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장애인근로자지원센터는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제3조와 제19조, 그리고 시행령 제20조를 근거로 2021년 4월 문을 열었다.
해당 법은 국가와 지자체가 장애인의 고용 촉진과 직업재활을 책임지고, 취업 후 적응지도를 통해 근로자가 일터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대전센터 역시 이러한 법적 기반 아래 장애인 근로자의 고충을 해결하고, 작업환경 적응, 상담, 수어통역 등 다양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박찬권 센터장은 “장애인의 고용유지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경제정책”이라며 “기업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며 장애인은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라며 “장애인 부모에게 가장 큰 선물은 ‘우리 아이가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직 시절 행복충전소, 무지개복지공장, 공공기관 건강카페, 헬스키퍼 운영 등 다양한 현장 사업을 이끌며 장애인 일자리 정책의 실무를 쌓아왔다.
당시 경험을 통해 행정이 현장과 멀어지면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크게 느꼈다고 밝혔다.
박 센터장은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를 바로 정책으로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제 역할이다”고 전했다.
대전장애인근로자지원센터는 전국 6개 센터 중 하나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위탁한 공통사업(상담, 심리·노무상담, 찾아가는 고충상담, 노동법률 교육, 홍보, 직원 역량강화 교육)을 수행하면서 지역 특화사업도 병행한다. 문화힐링사업, 발달장애인가족 캠프, 장애인근로자 통합사례관리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가족이 함께 쉬어야 장애인 근로자도 일터에서 버틸 힘이 생기는데 이런 휴식이 진짜 복지다”고 밝혔다.
올해만 해도 CGV와 협력해 350명에게 영화관람권을 지급했고 2021년부터 지금까지 1520명이 참여했다. 충남 공주 파크오브드림에서 진행한 발달장애인 가족 캠프는 6월과 10월 두 차례, 3가족이 참여해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됐다.

센터의 성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2024년 상담 722건(목표 714건), 찾아가는 고충상담 409건(목표 142건), 교육 315명(목표 89명) 등 모든 항목이 계획을 크게 초과했다. 2025년에도 10월 기준 상담 660건, 심리·노무상담 120건, 찾아가는 고충상담 241건으로 높은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박 센터장은 “직원 두 명이 상담과 교육, 회계, 홍보까지 병행하는 상황이지만 목표보다 높은 실적을 낸 건 모두 현장을 직접 찾아가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센터에는 성과뿐만 아니라 해고된 장애인 근로자의 재취업을 돕는 사례, 심리상담을 통해 분노조절문제를 해결한 사례 등 다양한 미담이 쌓였다. 서울의 한 컴퓨터 유지보수업체에서 10년을 근무하다 해고된 지적장애인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센터를 찾았다. 박 센터장은 초기상담 후 사업체 관계자와 보호자를 중재해 연차수당과 퇴직금 정산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돕고 구직등록까지 연계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법적 구제는 어려웠지만 다시 일터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게 진짜 상담이라 생각했고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또 다른 사례로는 충북 보은의 20대 지적장애 근로자를 소개했다. 근로자는 분노조절장애로 직장 내 갈등이 잦았다. 센터는 10회기의 무료 심리상담을 지원해 폭력적 행동을 완화하고 사회기술 훈련을 병행했다. 모든 상담이 끝난 뒤 그는 먼저 인사하고 동료의 일을 도우며 변해갔고 근로를 이어갈 수 있었다.
박 센터장은 “이런 변화를 보이는 것이 상담의 의미라며 이외에도 많은 사례들이 있으며 이런 일이 해결될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며 미소를 지었다.
또한 “장애인의 고용유지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숙제라고 단언하며 아직도 장애인 근로자를 비용으로 보는 시선이 남아 있으나 조금만 배려하면 누구보다 성실하다며 기업의 인식이 바뀌어야 중증 장애인의 재채용 기회도 열린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공공기관들과 협력해 중증 장애인 채용을 진행한 사례를 소개했다. 처음에는 불안해하던 다른 근무자들도 점차 시선이 바뀌었으며 나중에는 믿음직하고 성실한 근로자로 자리매김했다고 전했다. 다만 센터는 아직 홍보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내년에는 장애인채용박람회와 가족 문화캠프의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박 센터장은 “중앙의 지원이 더해진다면 더 많은 장애인 근로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센터를 ‘일할 수 있는 사회’의 관문으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 센터장은 ‘찾아가는 지원’을 강조했다. 그는 “장애인 근로자의 일터에 직접 가서 듣는 것이 진짜 상담이며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해결의 길이 보인다”며 “34년 동안 장애인 복지 현장에서 일하며 안타까운 소식을 많이 들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에서 직접 변화를 만들 수 있다며 이 일에 종사하게 된 것은 또 다른 출발”이라고 밝혔다.
박 센터장은 오늘도 현장을 향한다. 상담과 교육, 가족지원사업, 그리고 일터에서의 만남까지, 그의 하루는 여전히 ‘이동 중’이다.
박 센터장은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사회, 그게 내가 꿈꾸는 마지막 공직”이라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또 다른 상담을 위해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