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의 공기는 늘 정직하다. 밤새 쌓인 냉기를 조심스레 풀어놓으며 인간이 만들어 놓은 소음의 껍질을 벗겨낸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문득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지탱하는 힘은 무엇일까”오랜 세월 동안 공동체를 떠받쳐온 가치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크게 외치지 않았고, 소란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부서지는 파도 아래 단단히 박힌 갯바위처럼, 말없이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힘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경과 나눔이다.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 공경 -공경은 단순한 예절이 아니다. 한 인간이 걸어온 세월을 하나의 긴 이야기로 읽어내는 태도다. 주름진 얼굴을 나이의 흔적으로 보지 않고, 삶을 견디며 새긴 문장으로 바라보는 마음이다.발걸음이 더디더라도 그 안에 담긴 계절의 깊이를 헤아리는 일, 이것이 공경이다. 상대를 높이거나 낮추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가장 순진한 가르침이다.태안의 바람이 뜨거운 모래도, 차가운 모래도 가리지 않고 품듯 공경은 삶의 상처와 기쁨을 거부하지 않는 조용한 포용의 힘이다.
마음의 여백을 내어주는 일, - 나눔 나눔은 가진 것을 떼어주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마음 안의 빈 공간을 타인에게 열어두는 자세에 가깝다. 말없이 건네는 따뜻한 시선, 잠시 시간을 떼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살아오며 배운 한마디의 지혜를 건네는 일.특히 인생의 뒤안길을 걸어온 이들에게서 나는 이러한 나눔을 자주 본다. 세월의 주름이 시간의 무게를 증언하면서도 그 눈빛은 오히려 따뜻하고 넉넉하다.잃어본 적이 많았기에 더 나누려 하고, 고단한 길을 지나왔기에 더 너그러워진다.
그들은 말한다. “사람은 결국 서로를 통해 완성된다”고. 태안의 바다에서 배우는 지혜 -태안의 바다는 크고 작은 강물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다. 격한 파도를 견딘 다음 날에도 묵묵히 새 하늘을 비춰낸다.그 넉넉함이야말로 공경과 나눔의 모습이다. 때로는 흙탕물을 품고, 때로는 모래를 안지만 결국 큰 물결 속에서 모두를 끌어안는다. 삶의 굴곡을 지나온 이들의 마음도 이와 같다. 상처와 기쁨, 오래된 기억이 한데 섞여 더 넓은 품을 이루고 더 깊은 나눔으로 이어진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힘은 한 사회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바로 이런 조용한 가치들이다. 존중이사라지면 말투가 거칠어지고, 나눔이 사라지면 마음이 메말라간다. 그러나 반대로, 공경이 살아 있는 곳에서는 사람의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나눔이 숨 쉬는 곳에서는 공동체의 분위기가 따뜻해진다. 공경과 나눔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가고 단단하다. 속도를 좇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다시 세대를 잇는 공경의 문화를 세워야 한다.
새벽처럼 스며드는 따뜻함은 새벽이 밝아올수록 빛은 더욱 선명해진다. 공경과 나눔 역시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 실천은 사회를 분명히 변화시킨다. 한 사람을 향해 마음의 높이를 낮추는 일, 내 안의 여백을 타인을 위해 내어놓는 일은 이 두 가지가 함께 할 때 우리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오늘 아침, 따뜻한 차 한 잔처럼 스며드는 한 줄기의 온기가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